'희망'에 해당되는 글 635건

  1. 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
  2.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3.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원제 : A Day with a Perfect Stranger)
  4. EBS '다큐프라임' - 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
  5. 아침 운동 겸 꽃놀이
  6. 백만년만의 북한산행
  7.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등정

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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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우장춘에 대한 성공스토리인줄 알고 봤는데... 우장춘의 아버지가 을미사변에 일본인편에서 민비시해사건과 연관이 있었고, 그에 따른 우장춘의 고뇌에 대한 소설이였다.
처음에는 거짓이 아닌가하고 찾아봤더니 역사적인 실제 사건이였다고...
거기에다가 한국의 국보라고 치켜세워서 한국에 입국을 시켜놓고는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게 방해공작까지...
연좌제.. 애국심.. 정치.. 음모.. 배신.. 생존... 뭐 그런것들이 복잡하게 역여있는 참 가슴아프고, 세상살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였다.

우장춘 - 감추기
우장춘(1898~1959)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은 인생의 마지막 시절이며, 가장 소중한 시기였던 고국생활의 첫걸음을 다소 거창하게 시작했다. 귀환동포의 행렬도 뜸해진 1950년 3월 8일 부산항 부두. 오가는 사람들 속에 다소 거창한 환영 대열이 눈에 띈다. 대형 플래카드를 내세운 것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설렘과 초조함으로 보아 예사 인물의 귀환은 아닌 듯하다. 과연 들고 있는 대형 플래카드에는 '환영 우장춘 박사 환국'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일본에 거주하던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의 귀국이었다.

이윽고 한일교환선으로서 조선인 불법 체류자나 범죄자를 추방하는 강제 송환선이었던 신코마루(新興丸)가 도착하자 뱃머리에 우장춘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인이라면 지독히 멸시하는 일본 사회였고,조선인을 추방하려는 것이 당시의 추세였다. 하지만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우장춘이기에 일본은 그를 붙잡아두려 했다. 이에 우장춘은 본적이 서울임을 내세워 불법 체류자를 자처하여,밀입국·범법 외국인을 수용하는 오오무라(大村) 수용소에 입소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강제 송환선을 타게 된 것이었다.

이후 우장춘은 그의 귀국을 추진한 '우장춘박사환국추진위원회'가 동래 온천장에 한국농업과학연구소(뒤에 중앙원예기술원,원예시험장)를 마련하자,여기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다. 귀국 환영식장에서 '조국의 땅에 뼈를 묻겠다'고 한 그의 말처럼,우장춘은 1959년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줄곧 이곳에서 한국적 토양에 맞는 농법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우장춘이 활동한 동래 원예시험장은 1950년대 한국 농업 개발의 산실이었다.

우장춘의 업적은 먼저 그동안 일본에 의존하고 있던 무와 배추 등의 채소 종자를 개량하여 국산화함으로써 채소 종자의 '독립'을 꾀했다. 아울러서 일본에서 수입하던 무균종서(無菌種薯,병이 없는 씨감자)를 대관령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하여 한국전쟁 뒤의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작물 재배에 인분뇨 사용을 금지한 '청정 재배' 방식을 보급하고,화훼원예의 발전에도 초석을 놓았다. 이외에도 많은 분야에서 농업기술을 개발하여 우리 나라 육종학의 터전을 닦았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는 '씨 없는 수박'의 신화는 사실은 잘못된 이야기다. '씨 없는 수박'은 이미 일본의 기하라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인데,다만 우장춘은 기하라연구소의 방법대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보인 것뿐이다. '수박은 씨를 발라내며 먹어야지,'씨 없는 수박'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시큰둥하던 우장춘이 이를 만들어 보인 것은 '기적'을 보여주어 농정의 권위를 확보하고자 한 때문이었다. '농촌지도소가 권장하지 않는 식물을 심으면 된다'는 것이 상식이 될 정도로 농정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였던 현실 상황,일껏 개발한 우량 종자라도 보급이 어려웠기 때문에 다소 자극적인 방법으로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장춘이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 농업에 끼친 공적이 폄하될 수는 없다. 우장춘의 공적은 한갓 '씨 없는 수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한국 육종학의 씨를 뿌린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로로 우장춘은 1957년 제1회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임종 직전이었던 1959년 8월 7일에는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상했다. 때문에 그는 '인간 국보','살아있는 문화재'로 불리며 뭇 사람들의 존경과 우러름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우장춘에 대한 평가가 찬사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우장춘의 가계에 대한 노골적인 분개와 비아냥,싸늘한 냉소 또한 분명한 현실이었다. 가족,특히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범선(禹範善,1857~1903)은 한말의 개화파 무인으로서 일찍부터 친일 근대화를 주장한 인물이다. 1895년에 우범선은 휘하의 장병을 이끌고 명성왕후 민비의 살해(을미사변)에 참여했다. 그 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1903년 독립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고영근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이로써 고영근은 대한제국으로부터 포상되었으며,우범선은 국모 시해의 역적,친일 매국노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우장춘은 불우했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우범선과 사카이 나카(酒井仲)라는 일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혁명 정객으로서의 자부심과 친일 매국노라는 오명,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양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고스란히 우장춘의 몫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혼자 꾸리는 살림은 극도로 궁핍하여 한때 우장춘은 고아원 생활을 했다. 이런 지독한 가난은 우장춘이 장성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거기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사이에서 노골적인 냉대와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아야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버지의 존재에서 비롯한 천형(天刑)과도 같은 멍에,아버지의 사후 일상이 되어버린 지독한 생활고,한국인 혼혈아로서 일본인 사이에서 받아야 했던 멸시.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는 고난은 우장춘을 세상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깊은 고뇌를 간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그에서 비롯된 고난이 우장춘을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그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밟혀도 꽃을 피우는 길가의 민들레'처럼,우장춘은 자신에게 가해진 현실의 질곡을 담금질의 계기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이루어낸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였다는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 이로써 우장춘은 세계 유전학계에 이름을 아로새기게 되었다. 즉 한국인이며,전문학교(도쿄제국대학 부설 농학실과)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농학자로서의 당당한 입지를 굳힌 것이다.

이런 그에게 조국의 부름은 나름대로 금의환향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우장춘은 비록 한국말을 못했지만,한국인이라는 인식은 뚜렷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지낸 50여 년 동안 한국식 성명을 고집한 것,이제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 일본을 떠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까지 자신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았을 한국행을 흔쾌히 결정한 것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뒷날 우장춘은 자신의 민족의식을 지탱해 준 것은 '너는 조선 혁명가의 아들'이라고 부단히 일깨워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우장춘은 어머니의 죽음에 임종조차 하지 못하였으니,그것은 그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한 정부가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다만 우장춘은 원예시험장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우물에 자유천(慈乳川,자애로운 어머니의 젖이 솟는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에게 생명수와 같았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올해는 우장춘이 영면한 지 43주년이 되는 해이다. 원예시험장이 수원으로 이전한 뒤,일대는 주택가로 바뀌어 이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자유천이 있는 협소한 일대가 우장춘 유적지로 보존되어 왔는데,1999년에 자유천 뒷편으로 우장춘기념관이 건립되어 우장춘의 사적을 보존하고 있으며,그가 한국 육종학계에 남긴 발자취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비록 작더라도 그것이 역경을 헤쳐 나온 노력의 산물이라면,그처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고난과 역경 앞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맞섰던 한 인간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그를 찾아 온천장으로 나서보자. 김선미·영산대 강사

1898

日 망명개화파
우범선의 아들로 출생

1903

아버지 피살뒤 편모슬하 성장

1919

도쿄제국대 부설 농학실과 졸업,日 농림성 농사시험장 임용

1930

피튜니아꽃 육종합성 성공

1936

종의 합성이론으로 모교서 농학박사 학위 취득

1950

귀국. 부산정착.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 취임

1957

제1회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59

대한민국 문화포장  수상.
별세


우 범선(우장춘의 아버지) - 감추기
1881년(고종 17) 별기군(別技軍) 참령(參領)이 되고 개화파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을미사변 때 훈련군 제 2대대의 대장으로써

일본군 수비대와 함께 궁궐에 진입해서 휘하장병을 이끌고

명성황후의 시해를 방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아관파천 후에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여성과 결혼했지만

나중에 암살됐죠..

당시 네살이었던 우장춘은 고아원과 엄마 사이를 오가면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구요..

자라서 자신의 피가 섞인 일본을 몹시 증오해서

직장에서 창씨개명을 요구하자 즉시 사표를 냈다고 하는군요.(이건 좀 미화된 이야기같기도 ..)


우장춘에 대한 평가가 찬사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우장춘의 가계에 대한 노골적인 분개와 비아냥,싸늘한 냉소 또한 분명한 현실이었다.
가족,특히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범선(禹範善,1857~1903)은
한말의 개화파 무인으로서 일찍부터 친일 근대화를 주장한 인물이다.
1895년에 우범선은 휘하의 장병을 이끌고 명성왕후 민비의 살해(을미사변)에 참여했다.
그 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
1903년 독립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고영근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이로써 고영근은 대한제국으로부터 포상되었으며,
우범선은 국모 시해의 역적,친일 매국노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우장춘은 불우했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우범선과 사카이 나카(酒井仲)라는 일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혁명 정객으로서의 자부심과 친일 매국노라는 오명,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양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고스란히 우장춘의 몫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혼자 꾸리는 살림은 극도로 궁핍하여
한때 우장춘은 고아원 생활을 했다.
이런 지독한 가난은 우장춘이 장성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거기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사이에서 노골적인 냉대와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아야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버지의 존재에서 비롯한 천형(天刑)과도 같은 멍에,
아버지의 사후 일상이 되어버린 지독한 생활고,
한국인 혼혈아로서 일본인 사이에서 받아야 했던 멸시.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는 고난은 우장춘을 세상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깊은 고뇌를 간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그에서 비롯된 고난이 우장춘을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그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밟혀도 꽃을 피우는 길가의 민들레'처럼,
우장춘은 자신에게 가해진 현실의 질곡을 담금질의 계기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이루어낸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였다는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
이로써 우장춘은 세계 유전학계에 이름을 아로새기게 되었다.
즉 한국인이며,전문학교(도쿄제국대학 부설 농학실과)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농학자로서의 당당한 입지를 굳힌 것이다.

이런 그에게 조국의 부름은 나름대로 금의환향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우장춘은 비록 한국말을 못했지만,한국인이라는 인식은 뚜렷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지낸 50여 년 동안 한국식 성명을 고집한 것,
이제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 일본을 떠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까지
자신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았을
한국행을 흔쾌히 결정한 것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뒷날 우장춘은 자신의 민족의식을 지탱해 준 것은
'너는 조선 혁명가의 아들'이라고 부단히 일깨워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우장춘은 어머니의 죽음에 임종조차 하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한 정부가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다만 우장춘은 원예시험장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우물에
자유천(慈乳川,자애로운 어머니의 젖이 솟는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에게 생명수와 같았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올해는 우장춘이 영면한 지 43주년이 되는 해이다.
원예시험장이 수원으로 이전한 뒤,일대는 주택가로 바뀌어
이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자유천이 있는 협소한 일대가
우장춘 유적지로 보존되어 왔는데,
1999년에 자유천 뒷편으로 우장춘기념관이 건립되어
우장춘의 사적을 보존하고 있으며,
그가 한국 육종학계에 남긴 발자취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서 정보>제   목 : 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
저   자 : 이남희
출판사 : 창비
출판일 : 2006년 12월
책정보 : 페이지 330 / 504g   ISBN-10 : 8936433563 / ISBN-13 : 9788936433567
구매처 : 오디오북(KBS)
구매일 :
일   독 : 2007/3/9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플라스틱 섹스』 『사십세』를 발표했던 중견작가 이남희가 ‘씨없는 수박의 개발자’로 알려진 육종학자 우장춘의 생애와 인간적인 고뇌에 시선을 맞추어 쓴 장편소설. 이 소설은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우장춘의 업적 뒤에 가려진 복잡한 가족사와 그로 인한 갈등과 번민, 그리고 해방된 조국의 농업 근대화에 앞장서기까지의 굴곡진 삶을 평전 형식으로 쓴 작품으로, 화려한 명성에 가려진 우장춘의 생애의 이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한 가족, 한 문제적 인간의 삶을 그려내 역사인물소설의 탄탄한 성취를 보여준다.

저자 : 이남희
1958년 부산 출생. 충남대 철학과 졸업.1986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저 석양빛』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역사적 전망과 환경 문제, 지난 연대의 고통스러운 기억,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자화상 등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소설집 『지붕과 하늘』(1989), 『개들의 시절』(1991) 『사십세』(창작과비평사 1996) 『플라스틱 섹스』(창작과비평사 1998)과 장편소설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1991), 『소설 갑신정변』(『저 석양빛』 개제, 1991), 『산 위에서 겨울을 나다』(1992), 『사랑에 대한 열두 개의 물음』(1993), 『음모와 사랑』(1994) 『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창비 2006) 등이 있음.


<줄거리>



<책속으로>
프롤로그 1953년 부산

1. 1903년 일본 쿠레
2. 아이들은 어떻게 사귀는가
3. 센진노꼬(鮮人の子)
4. 토오꾜오, 희운사
5. 허약한 소년
6. 기선(汽船)아, 나도 데려가다오
7. 1916년, 토오꾜오
8. 칸다의 남명구락부
9. 20세기 청년백서
10. 음치
11. 한여름밤 히비야의 폭동
12. 백합 같은 그녀
13. 두 번이나 경고를 받다
14. 그 전날 밤
15. 태풍 속에서
16. 샹하이로 가는 길
17. 암살자와 마주쳐
18. 적의 심장부에서 독립을 외치다

에필로그 작은 연꽃: 우장춘 죽기 육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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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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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아가던 한 여인이 자신을 찾아가기위해 쓰던 노트를 책으로 펴내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아주 좋음...
무슨 명상집처럼 한구절 한구절이 참 마음에 든다... 많이 들어왔던 내용이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 다가와서 아픈곳을 찔러준다...
다만 이렇게 아픔만을 느끼고.. 그 아픔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울뿐이다...


Yes 리뷰 - 감추기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를 꿈꾼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하고 승진도 누구보다 빨리 하려고 하고, 돈도 많이 벌려고 한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아니면 가족을??


행복을 위해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이게 내 행복을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 책의 저자는 정신없이 바쁘면서 심한 좌절감만 안겨주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곤 지난 10년 동안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나의 비망록’이라는 작은 노트를 만들게 되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그 비망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공개하자고 해서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작은 비망록에는 가족과 친구, 유럽, 미국, 아시아 등 각국의 성직자와 교사 등의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바로 “우리의 일상과 생활을 게으르지 않되 단순화하고 느리게 산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빨리 빨리”를 외친다. 거기에 우리 자신이 맞춰지면 우리 마음에 있던 여유가 없어지고 마음이 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들이 어느 사이 뒤로 밀쳐지게 되어 버린다.




 


저자는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사는 9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1.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2.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 옛날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3.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지 마라.


 -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며, 그들과 함께 즐겨라.


 


4.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하지 마라.


 - 괜한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5.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6.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




7. 나이 든다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가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8.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당신은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며 결국 죽게 될 것이다.




9.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가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으므로.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다시 한 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만큼 나를 일깨워주는 좋은 말들이 많았다.


나도 ‘여유롭게 천천히 즐기면서 살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한층 행복하고 여유러운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외친다. “가벼워지자, 삶이라는 것으로 부터!!!!!”


<도서 정보>제   목 :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저   자 : 기젤라 크레머 저/이민수
출판사 :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일 : 2007년 1월
책정보 : 페이지 183 / 416g   ISBN-10 : 8992124120 / ISBN-13 : 9788992124126
구매일 :
일   독 : 2007.3.21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짧아서...-_-;;


<미디어 리뷰>
저자 기젤라 크레머는 10여 년 동안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의 경험과 조언, 충고 등을 모아 ‘나의 비망록’이라는 작은 노트를 만들었다. 이 작은 책자를 관통하는 원칙은 바로 ‘게으르지 않되 단순하고 느리게 살기’이다. 그렇게 지은이는 자신의 작은 노트를 통해 조금씩 행복하고 참된 삶을 찾게 된다.

‘나의 비망록’이라는 작은 노트를 공개한 결과물이 바로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이다. 이 책은 10여 년 동안 오로지 ‘행복한 인생’만을 고민한 저자의 유일한 저서이다.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사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 : 기젤라 크레머
연극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그후 정신없이 바쁘면서 좌절감만 안겨주는 일상의 삶을 돌아보며,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음의 균형과 행복 찾기에 전념했다.
그 결과 ‘나의 비망록’이라는 그만의 작은 노트를 갖게 되었다. 이 노트로 어느 날 그는 한층 성장한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비망록을 공개하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만의 내밀한 기록을 세상에 공개하게 되었는데, 이 책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이 바로 ‘나의 비망록’이다.


<책속으로>
머리말 가벼워지자, 삶이라는 것으로부터!

1장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우리는 늘 바쁘다?
인생에는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다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사는 삶
어른이 되어 깨닫는 것들

2장 열 같은 하나, 단순하게 산다는 것
바보들은 항상 시간을 도둑맞는다
휴식을 넘어서는 느림의 미학을 가져라
삶을 행복하게 가꾸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
단순한 여행으로 가는 첫걸음
오래전에 잃어버린 단순한 습관 찾기
세상을 바꿀 내 안의 작은 씨앗
느림을 핑계 삼아 휴식의 노예는 되지 마라
인생의 소중함을 보는 법

3장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아슬아슬함에서 벗어난, 몸이 원하는 휴식
자연을 온전히 느껴보라
삶의 비상구, 동굴을 마련하라
마음의 방음창 만들기
모든 것을 다 알고자 하면 나를 잃는다
영혼으로의 여행, 고요함에 머물다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하다

4장 나와 너 그리고 삶, 그 어울림을 위하여
천천히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일이 즐거우면 삶이 즐겁다
오늘을 즐겨라
시간 사냥꾼이 되라
일기, 내 인생의 정직한 해답



5장 금전적 자유를 위한 짧은 깨달음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바로 그것
비축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소비를 뛰어넘는 돈 쓰기
다른 사람의 성공이 있기에 내 성공도 가능하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시간을 가져라
인생에는 특별한 일이 너무도 많다
느림은 버림의 미학에서 온다

6장 더불어 사는 지도를 그려라
영혼에 꽃을 피우는 성품
신뢰를 선물하라
그대와 함께 춤을
친절하게 말하는 “노”는 진실하다
가까울수록 소중하고 새롭게 여겨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는 작은 변화
사람들의 관계로 자라는 영혼의 정원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7장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라
용서를 실천한다는 것
인생에도 아웃소싱이 필요하다
삶을 위해 이별을 연습하라
영혼이 기뻐하는 것을 하라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미래는 변한다
인내와 겸손이라는 마법의 언어

8장 아름다운 세상을 느리게 살아라
웃음만이 당신을 구원한다
아름다운 순간은 분명히 다시 찾아온다
영혼을 뜨겁게 찌르는 순간을 기록하라
당신의 삶을 모자이크하는 단어들
ONE MAN TANGO
느리더라도 날마다 새로워져라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히
우리에게는 걱정할 수 있는 다음날이 있다

옮긴이의 글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죽는 순간에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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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원제 : A Day with a Perfect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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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수님을 만났다고 종교에 푹빠진 남편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비행기 안에서 한 사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체험담...
억척스럽게 신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를 믿으라 하기보다는 이야기로 설득하려고 하고, 그녀의 부정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해보게 해준다.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해준다...
다만 나를 설득하는데에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은것이...-_-;;


<도서 정보>제   목 :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원제 : A Day with a Perfect Stranger)
저   자 : 데이비드 그레고리 저/서소울
출판사 : 김영사
출판일 : 2006년 9월
책정보 : 페이지 200 / 331g   ISBN-10 : 893492313X
구매일 :
일   독 : 2007/3/2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저녁식사로 부족했다면, 이제 예수님과 함께 가장 완벽한 하루를 보내세요.”

뉴욕타임스, 아마존닷컴 장기 베스트셀러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신작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원제 : A Day with a Perfect Stranger)>가 출간되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지난 1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출간되자마자 기독교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평범한 샐러리맨 닉에게 한 통의 낯선 초대장이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남자와의 저녁 만찬! 하룻밤 저녁식사 동안 인생의 의미와 행복, 고통, 가족, 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깊이 있게 오고간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의 후속작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는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간 닉의 가정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와 저녁식사를 함께한 닉의 일상에는 그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는 닉의 아내 매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남편이 이제 소위 ‘예수쟁이’가 된 것이다! 얼토당토않게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말끝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떠날 날이 없다. 급기야 매티는 자신의 부부생활이 서로에게 도움은커녕 고통과 상처만 주는 관계라고 결론 내리고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한다. 그때 마침 찾아온 출장 기회! 속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매티는 출장을 떠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기로 결심한다.

종교를 가진 남편, 기독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나에 대해, 내 가정의 위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예수가 해주는 인생 최고의 카운슬링!”

비행기에 오른 매티는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자신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워한다. 미처 읽을거리도 챙기지 못한 매티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남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남편의 느닷없는 돌변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은 매티는, 부부간의 갈등과 동생이 겪은 상처, 옛 추억에 대한 의문 등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고민에서부터, 종교와 하나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화로 빨려들어간다.

옆자리의 남자가 풀어놓는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이야기로, 종교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매티의 회의적인 시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매티는 무조건적 사랑과 남녀간의 진정한 관계, 견고하고 완전한 충만감을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

이 우연한 여행 동반자가 다른 사람은 결코 알 리 없는 자신의 고민들을 하나씩 건드리며 풀어주자, 매티는 어쩌면 닉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닉이 믿게 된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했던 것은 아닐지 처음과는 반대의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저자: 데이비드 그레고리
경영학을 전공하고 10년간 비즈니스 커리어를 쌓아온 데이비드 그레고리는 보다 본질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 노스텍사스 대학교에서 종교와 커뮤니케이션을, 댈러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자극적인 소음과 인터넷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대화만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라는 생각 하에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를 저술하였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로 무명의 신학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 그레고리는 ‘예수와의 대화’라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복음을 전한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가족 간의 종교 갈등 문제를 다룬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를 저술하였다. 이 두 권의 책으로 그는 초신자와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복음을 전해주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의 리뷰를 받고 있다.

저서로는 <놀라운 만남The Marvelous Exchange>, <복음서에 남은 이야기 The Rest of the Gospel> 등이 있다.

“부부 갈등, 종교 갈등, 진로 고민, 연애 상담…
예수에게 카운슬링을 받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의 예수는 능숙한 ‘카운슬러’다. 매티 앞에 나타난 예수가, 기독교인이 된 남편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하려고 찾아왔을 거라 단순히 상상하면 오산이다. 매티에게 찾아온 예수는 종교에 대한 불신에 친구처럼 공감하고,(예수 왈, “그래요, 종교란 늘 모든 걸 망쳐버리죠. 저는 종교가 정말 싫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매티의 후회와 혼란 앞에서는 가족의 사랑과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뛰어난 카운슬러의 면모를 보이는 예수는,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매티 자신에게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과 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예수의 말에 조목조목 논박을 펼치던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의 닉만큼이나 매티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가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멀어진 기억,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여동생의 불행한 삶, 회사에 이어 예수에게 빼앗긴 남편…. 종교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그녀에게 예수는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예수는 평범한 카운슬링의 기교나 단순한 전도의 목적이 아닌, 매티의 응어리진 상처를 매티 스스로 응시하게 하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같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하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충만함으로 이끌어 준다.

죽었다 깨나도 교회라면 주차장도 이용하지 않을 사람이 예수의 단짝이 됐다!
내 남편이 이상해졌다! “예수님,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래요?”

매티 “우리 인생에 난데없이 종교가 끼어들었어요. 종교가 모든 걸 망치고 있어요.”
예수 “그래요, 종교란 늘 모든 걸 망쳐버리죠. 저는 종교가 정말 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때문에 삶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어요. 종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걱정하죠. 또한 종교가 노예제도, 인종차별, 성차별, 전쟁, 박해와 같은 무수한 만행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고요.”

매티 “우리가 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요? 그건 개미가 인간과 소통하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예수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도 하고, 감정도 느끼고, 사랑도 하는 그런 하나님이라면요? 바로 우리들처럼요. 또…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은,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까요? 당신에게 무엇이든 다 주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곧 창조주의 모습이 아닐까요?”

매티 “처음에는 일중독에 빠지더니 이젠 예수 중독이네요. 어느 쪽이든 저는 안중에도 없어요. 부부란 게 뭔데요?”
예수 “닉은 보다 심오한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귀를 잘 기울이면 자신의 마음이 정말로 찾고 있던 것을 얻을 겁니다. 남편 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바람이 얼토당토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까요?”

매티 “과연 그럴까요? 주위를 보면 하나님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이 늘 있잖아요.”
예수 “그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계세요? 그들도 당신과 똑같을지 몰라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게 충족된 삶은 아닌 거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보세요. 사람들이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하는 것들을요. 술, 마약, 음식, 일,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스포츠, 섹스, 쇼핑…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는 건 지구상에 없습니다. 신이 아닌 무엇도 채워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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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 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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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숨은 모습, 사라져가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재개발로 30년이상을 살아왔던 집이 허물어지고 이사를 온 지금...
지난 날의 애절함과 그리움이 베어나온다...
아~ 옛날이여~
지난 날의 추억은 다 어디에 갔는지... 그저 나의 가슴속에 남아만 있는것인지
현재의 무차별적인 개발에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방송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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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창사특별기획 - 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소중한 곳들에 대한 기록
서울 토박이 30대 6인과 서울 곳곳 탐방
고향, 점심시간 등 일곱 가지 주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결



서울은 '현재'만이 존재하는 도시다. 지금 이 순간도 서울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서울은 빠르게 변한다. 동시에 똑같은 속도로 변하기를 강요하며 과거의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EBS <다큐 프라임> ‘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6월 18일 방송, 김훈석 연출)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심에서 사라지게 될 '그곳들'을 찾아간다. 서울에서 느린 삶을 살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겪고 있는 동네. 프로그램은 그 지역들이 간직한 건축 양식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서울의 '사랑스런' 모습을 담는다. 미래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서울의 곳곳으로 시청자들을 안내한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30대

제작진은 서울 프로젝트를 공모해 서울의 변화를 기록할 6명으로 선발된 도시인들과 함께 동네 탐방을 떠난다. 짧지만, 유년 시절 골목의 기억을 간직한 그들은 우연히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30대들이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서울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만의 시선으로 서울을 나레이션 없이 담담히 담아본다.

7가지 옴니버스 이야기

6명의 도시인이 찾아간 곳은 동빙고동, 명륜동, 만리동, 아현동, 해방촌 등. 골목길이 있고 옛날 집이 있으며 이웃과의 소통이 있는 동네다. 하지만 서울에서 오랜 기억을 간직한 그 지역들은 살기 어렵고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개발의 가능성을 노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오랫동안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 획일적이고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개발 속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개발'과 '기억'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지... 7가지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로 엮어본다.

* 고향

'마당이 있는 한옥'. 이것이 동빙고동 3대 토박이 김병인 씨(39세)가 기억하는 고향의 첫 장면이다. 이후 아파트 첫 세대가 된 그에게 '그 집'은 따뜻했던 유일한 기억이다. 계속해서 빠르게 질주하는 서울에서 '고향이 어디세요?' 라는 물음은 낯설다. 그가 '서울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유 또한 ‘낯선 고향 서울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는 오랜만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동빙고동을 찾아가본다.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몇 가지 표식들이 남아 있었다. 어릴 적 그가 살던 집과 비슷한 한옥집에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빌라들에 둘러싸인 낡고 초라한 집. 서울에서 기억을 간직한 곳이란 모두 낡고 초라하기 곳들이다.

김병인씨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추억에 관련된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막상 내가 살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고요. 제가 오히려 너무 옛날 모습만 보여드려서 동네 주민들이 걱정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집값들로 예민하시지 않습니까?"라며 웃는다.


* 점심시간

낡은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짓는 직업을 가진 건축설계사 이상권 씨(34세). 바쁜 업무 중에서도 그가 점심시간마다 빼먹지 않는 일이 있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곳들을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

아직까지 '질서'를 간직한 구도심은 그에게 휴식 같은 곳이자 다행스런 공간이다. 최근 들어 도시의 급격한 변화를 체감한다는 그는 그것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 날, 오랜 세월을 간직한 명륜동 골목길에서 재개발 소식을 듣는다. 50년대 기와가 잘 보존된 집은 그 희소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서울에서 곧 사라질 것이다.

이상권씨는 "저는 여기가 개발될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점점 이런 가치가 없어지니까... 저도 건축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건축가들이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도 그런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갖고 있는데 남아 있는 모습을 담는 거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 차양

서울에 남아있는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회사원 정혁진씨(32세)에게 아현동은 골목과 사람 모두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곳은 살지 않은 타인에게는 불편함 보다는 정겨움이 더 많은 동네다. 또한 골목, 화분 등 오랜 시간 공동체 의식이 쌓아온 그곳만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만난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서울 프로젝트 팀과 함께 아현동 골목길을 찾아가본다. 동네 주민들을 위해 슈퍼 앞에 차양을 만들었다는 건흥슈퍼 할아버지부터 동네의 정겨운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다.

* 빵구

다큐팀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아현동 일대는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됐다. 오랫동안 개발을 기다렸던 동네주민들은 이사 준비로 어수선해진다. 타인에게 그곳은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공간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불편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개발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 중 보수하지 못한 낡은 주택에 세입자로 살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가 사는 집의 낡은 지붕은 구멍이 뚫려 비가 새지만 재개발을 바라는 집주인은 오랫동안 보수를 해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집은 이번에도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 부덕이

회사원 임준형 씨(30세)는 3년 전 만리동에 사는 장태수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우연히 만리동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어드린 이후 언덕길이 예쁜 만리동을 종종 찾는다.
오랜만에 제작팀과 만리동 출사길을 떠난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집 자랑과 함께 만리동 재개발을 앞둔 할아버지의 고민을 들어본다. 부덕이는 할아버지가 키우는 개 이름이다. 이사를 가게 되면 7년간 함께 해 온, 만리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덕이가 살 곳이 없어진다. 그게 할아버지의 가장 큰 고민이다.

* 고양이

서울에는 유난히 버려진 고양이들이 많다. 그 길고양이들이 잠잘 곳과 먹을 곳을 찾아 모여드는 동네와 이주하는 동네까지 변화에 민감한 고양이들의 '서울 생활'을 김완호(34세), 이경화(33세) 부부의 사진으로 만나본다.

*스카이 아파트
다큐 팀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이상권 씨(34세)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정릉 스카이 아파트 한 동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곤 했던 스카이 아파트는 이제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곳이 됐다. 무허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민간건축업자가 지었다는 스카이아파트는 시민아파트들 중에서도 꽤나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사람이 가꾸고 다듬은 건물은 좀 더 오래 가잖아요. 관리만 됐다면 더 오래갈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점심시간 그곳에서 만난 이상권 씨의 말을 통해 획일적인 개발에 대한 해답은 없는지, 서울을 사랑하는 조금 다른 방식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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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 겸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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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아침에 일어나서 다녀온 수리봉...
집 뒤의 불광사쪽으로 올라갔는데
와~우~ 진달래가 만개해서 거의 진달래숲을 이루고 있는 장관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혼자만이 있었다...

구기터널 입구쪽으로 내려오니 그곳에는 개나리의 장관이 펼쳐져 있다.
간만에 오른 산행이라 처음에는 허리가 많이 아프기는 한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던 산행길...
이게 다 진달래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힘들지만 한걸음한걸음 걷다가보면 상쾌해지는 이 기분, 이 마음, 이 몸...
이제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가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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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만의 북한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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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햇빛까지 들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올라간 북한산...
내심 사람이 거의 없겠지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 일기예보를 안믿기는 하나보다...-_-;;
불광사로 올라갔는데, 젠장 문을 걸어놓아서 사람들이 개구멍으로 통과를 해서 지나감...
수리봉에 올라갔다가 구기터널쪽으로 내려왔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산에 올라서 그런지 오르막길에서는 엄청 힘이 들었고, 다시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라는 각오를 해본다...
내려오는길에 물소리가 엄청 시끄러웠고, 길들이 개천으로 변해서 내려오기도 쉽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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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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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간다했던 북안 스카이웨이를 가보기로했다.
자동차로만 몇번 다녀온적이 있던 스카이웨이...
뭐 마실이나 다녀오자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구기터널을 지나서 상명대앞까지는 아주 가뿐하게 왔는데...
상명대부터 북악 스카이웨이까지 계속적인 업힐이다...-_-;;
스카이웨이입구에서 군인과 눈인사를 시작한것까지는 좋았는데...
정말 뒤지는줄 알았다는...-_-;;
세상에 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힘든적은 처음이였고,
자전거 말고도 이렇게 힘든적은 거의 없었던것 같다.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일정도로 힘이 들어서 결국에는 1Km를 앞두고 멈추었다.
보통때같으면 쉬엄쉬엄갈수도 있지만, 업힐은 멈추게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전거를 끌고가야하기때문에 더욱 힘든듯하다.
팔각정에 도착해서는 기쁜 마음, 상쾌한 마음같은것은 하나도 없이 눈물, 콧물만...-_-;;

오래간만에 들려본 팔각정은 자동차를 타고 왔을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그리고 왠 오토바이 폭주족 같은 놈들이 우루루 몰려오는데... 허걱~ 신정환이 복장을 갖추고 타고 있더구만...
암튼 너무 힘이 들었는지, 체력이 소갈되었는지.. 정신없이 돌아보고, 좀 않아있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정릉방향으로 내려왔다가 삼청터널을 통해서 광화문으로 갔다가 사무실로 복귀...
전체거리는 21.68Km, 총시간은 1시간반정도, 최대속도는 43km
그러고보니 내려오는 길이 엄청난 다운힐에 길도 괜찮은데, 브레이크가 상태가 안좋아서 천천히 내려온것이 아쉽다.
그러고보면 출근할때 이쪽에 한번 들렸다가 퇴근하는것도 괜찮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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