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Dilkusha) - 서울 문화유적지 근대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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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강북삼성병원에 예약이 되어있느데,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 근처에 있는 딜쿠샤를 잠시 방문했습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던 미국인분이 1923년에 지은 오래된 빨간벽돌의 집입니다.

행촌동 근대건축물
      위     치:      종로구 행촌동 1-88, 1-89번지
      시     대:      근·현대
      종     류:      근대건축
      지도번호:      서울079

사직터널 북쪽 서울성곽 바깥에 위치한 주택가 안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보호수 서1-10)와 함께 서울시에서 세운 권율 도원수 집터 표석이 있다. 이 표석의 서쪽에는 석조 기단 위에 연와조로 지어진 오래된 양식건물이 남아 있다. 현재 건물은 훼손이 방치되고 있어 상태가 불량한 상태이다.
건물의 동쪽 측면 아래에 있는 머릿돌에는 두 줄로 「DILKUSHA 1923」「P.S.ALM CXXVII-I」가 새겨져 있다. 인도의 Gomti강 근처 공원에 Dilkusha Palace가 있는데, Dilkusha 의미는 ‘Hearts Delight’라고 한다.
한편, 초석에 새겨져 있는 ‘구약성서 시편 127장 1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는 구절이다.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머릿돌 하단에 로마숫자로 표시된 시편이 적혀있는 사실과 주민들의 ‘시킨스’라는 선교사가 살았다는 증언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집에 영국계통의 선교사가 살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건축물은 벽돌쌓기 등이 독특하고, 전체적인 구성도 빼어남에도 불구하고, 구 대한매일신보 사옥이라는 설에서부터 선교사주택으로 지어졌을 가능성 등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건물 자체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벽돌쌓기와 양식주택건축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근대건축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건물의 연원을 파악하기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한 후 적절한 보존대책을 수립하여야할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에는 최신식이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오래된 유물과같은 느낌이 드는 건물이더군요.
(카메라를 안가지고가서 폰카로 찍어서 화질이 상당히 구립니다...-_-;;)























이 나무는 420년된 은행나무인데, 이렇게 커다란 은행나무는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옆이 권율도원수집터라고 행주대첩의 권율장군의 집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네요...






가시는 길은 강북삼성병원 정문 입구에서 독립문쪽으로 가는 골목에서 약 200여미터 들어가다가 우측에 무슨 공립기관을 지나자마자 있는 경사가 심한 언덕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근처에 주차장도 있어서, 지나가시는 길에 잠깐 들려보시기에는 좋을듯 합니다.
가는 길에 무슨 음악가의 동상도 있던데, 홍난파선생님이던가...-_-;;

권율의집터
주소 서울 종로구 행촌동 1-113
설명 조선 중기의 명장 권율의 집터
상세보기


좀 더 제대로 된 사진이나 정보를 보고 싶으면 아래 블로그를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http://thiefcat.tistory.com/entry/%EB%94%9C%EC%BF%A0%EC%83%A4Dilkusha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EU1P&articleno=11806076#ajax_history_home


딜쿠샤(Dilkusha)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알버트 테일러 .그가 손수 1923년 종로 행촌동 서울성곽 아래 집을 지었다.
딜쿠샤는 행복한 마음,기쁨,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 라 일컷는 이 집의 이름.

테일러(Taylor家).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
-금광기사로 1896년에 아들 알버트와 함께 평북 운산의 금광개발에 참여 했다.
알버트 와일드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 UPI통신 서울특파원(free)등을 지냈다.
그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3.1 독립선언문을 입수한뒤 갓태어난 아들 브루스의 침대밑에 숨겨두었다가 이를 뉴스로 내보내 우리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이곳에서 아들 브루스 테일러를 낳고 4년뒤 이 집을 짓는다 . 이곳 딜쿠샤를.
자국이 아닌 타국을 사랑하고 자식에게 자신이 배운 사랑을 가르키며 살던 테일러 .

하지만 1942년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며 그는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일제에 의해 한국에서 추방된 뒤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던 그는 1948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뜬다.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붇어 달라.." 라는 유언을 남기며 ,
그리고 같은해 남한 정부가 수립되고 난 뒤 아버지의 유언은 지켜진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서울 양화진의 외인 묘지에 묻혀졌다.


DILKUSHA는 '행복한 마음'이라는 힌두어입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이 땅에 살았던 Taylor라는 외국인 집안의 흔적입니다. 조지와 그의 아들 알버트, 손자 브루스 테일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 1829~1908)는 조선땅에 금을 찾아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업자가 조선정부로부터 평안북도 운산의 금광 개발을 허가 받았습니다. 1896년, 67세의 조지테일러는 아들 알버트 테일러와 함께 조선 땅에 들어 왔습니다. 조지 테일러는 79세이던 1908년, 조선땅에서 죽어 외국인 묘지인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알버트 와일드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는 금광업자지만 1919년 UPI통신 서울특파원을 겸했습니다. 그는 3.1 독립선언문을 입수한 뒤 뉴스로 내보내 우리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알버트 테일러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조선 땅에서 아들 브루스 테일러를 낳았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조선땅에 독립운동이 있은지 4년 후인 1923년. 한양성곽 바로 바깥인 옛날 권율 장군의 집터에 붉은 벽돌집의 미국식 저택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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