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히스토리 미스테리 일본의 힘 사무라이

 


일본 사무라이에 대한 내용...
그들의 탄생부터 지금의 일본의 발전까지를 사무라이 정신에 의해서 돌아본다...
솔직히 좀 열이 받는다... 임진왜란이나, 일제침략등은 쏙 빼어버리기도 하고... 그들을 왠지 미화하는 모습, 정당, 합리...
뭐 솔직히 내가 쪽발이 아니니까 단정적으로 말할수는 없는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지겠지만....
암튼 무술이나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게 나오고, 어떻게보면 그들의 살아온 모습속에서 일면 대단한것이 없는것은 아닐것이다. 그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팔정도, 충성, 의리, 명예 등등...
아무튼 일본의 역사와 함께 이어온 사무라이로 다시금 일본을 돌이켜 보았던 방송이다..
근데, 외국인중에서 일본인 전문가가 무진장 많더구만...-_-;;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는 중세기 유럽의 기사에 해당한다. 초창기의 사무라이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사였지만, 후에는 자기 발로 걸으며 검과 활과 창,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총을 사용하여 싸우며 자신의 주군에 충성을 바쳤다. 그 700년 역사를 겪으면서 사무라이 계급은 일본의 정치와 사회의 골격을 이루었기 때문에, 사무라이 정신은 곧 일본인의 정체성(identity)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서기 10~11세기 경 봉건귀족의 영토권을 지키기 위한 지방경찰 같은 존재로 생겨난 사무라이(武士, 이 말은 일본말로는 '섬기는 자'라는 뜻임) 계급이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와해되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세기 들어 일본이 서양식 정치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사무라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계급은 사라졌지만, 사무라이 정신과 무사도(武士道)는 젊은 세대에게 계속 주입되었다. 그것은 전쟁 때 온 국민의 윤리가 됐다. 조종사가 사무라이 칼을 소지한다든가, 카미카제 공격을 감행한다든가, 항복보다는 죽음을 택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1970년 유명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를 상대로 연설한 후 할복한 사건, 미야모도 무사시의 오륜서가 서양 기업가의 "기업전쟁"을 위한 교재로까지 등장하고 있는 현실. 지금도 일본의 각 지방의 문화 축제에 반드시 등장하는 사무라이 복장들. 수많은 사무라이 영화들.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 별들의 전쟁(Star Wars)에 나오는 광선검. 따위는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무라이의 유산이다.





사무라이는 일본의 정신이라 일컫는다. 칼과 할복 등 차갑고 잔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진중함과 사내다움으로 남자들의 ‘로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된 ‘히스토리 미스터리-일본의 힘, 사무라이’는 일본 역사 속에서 700년 역사를 지탱해 온 사무라이의 역사를 소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무라이 문화가 곧 일본의 정치, 사회의 골격을 이루었고 일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사무라이는 ‘가까이 모신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본래 귀인을 가까이 모시며 경호하는 사람을 일컫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대를 거치면서 사무라이의 힘이 커졌고 천황을 위협하며 스스로 정권을 잡기에 이르렀다. 막부 정권의 탄생이었다.

막부 정권은 지방 정부였지만 이미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었다. 막부의 영주는 사무라이들을 거느리고 나라를 통치했다. 사무라이는 영주에게 토지를 보수로 받으며 농민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간혹 어느 영주에도 속하지 않고 떠돌며 계약직으로 전투에 참여하거나 농민들을 약탈하는 사무라이도 있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사무라이 정신은 그리 존중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전장에서의 승리 혹은 보수였다. 그들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 또한 칼과 검술이었다. 이러한 칼과 검술이 현재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남아 일본 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칼은 사무라이들에게 그들의 혼과 같았다고 한다. 장인들이 칼을 만드는 과정도 일종의 종교 의식과 유사했다는 것. 과거 방식으로 칼을 만드는 한 장인은 자신이 완성한 칼을 앞에다 두고 “이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여기에 새긴 내 이름은 천 년을 갈 것”이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검술은 사무라이들의 전투가 치열했던 전국시대에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특히 쓰가하라 보쿠덴은 일본 무술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으며 19차례의 일대일 대결에서 상대방을 모두 죽여 불패의 신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유파는 현재까지 검도나 유도 등 일본 무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방송에 따르면 사무라이 정신이 남긴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대동아 전쟁 때 보여준 일본인들이 집단적 광기가 그러했다. 또한 1970년대 유명작가 미사마 유키오가 자위대 연설 후 할복한 사건 등도 사무라이의 정신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현재 일본인들의 생활 곳곳에 남아 있는 크고 작은 사무라이 문화들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힘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다큐멘터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무라이의 흔적을 속도감 있게 짚어냈다. 다만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무리였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