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서울디지털포럼 특집 다큐 - 이제는 창의력, 상상력이다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들.. 중요성, 필요성...
블루우션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조적으로 열심히 산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렇게 중요성을 강조해도, 그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점점 그 능력을 상실해가는 듯하다... 마지막에 꼬마아이가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는 말에는 정말 가슴이 울컥했다는~
요즘 이 말이 참 많이 돌아다니던데, 아마 이 방송이 거의 처음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http://www.seouldigitalforum.org/kr/index.sdf

닉슨 데스포미어(뉴욕 컬럼비아대학 미생물학 교수)
만약 우리가 고층 건물에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다면 평지에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평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면 이전에 숲이었던 농토를 다시 숲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식량을 재배하기 위해서 땅이 필요하지 않고 원하면 어디서나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부다비, 두바이 같은 사막에서 농사를 지어 원하는 모든 식량을 생산 할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
실제로 현재 캐나다에서는 58층 높이의 스카이 팜을 구상중이다. 연간 3만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지만, 경작 면적은 일반 평지 농사의 6분의 1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닉슨 데스포미어(뉴욕 컬럼비아대학 미생물학 교수)
좁은 장소에서 훨씬 더 많은 식량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경재배를 할 경우 넓은 땅이 필요하지 않고 층층이 재배 가능하기 때문에 실내 경작을 할 경우에는 실외 경작 때보다 5배나 경작 면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일년 내내 경작할 수 있어서 실외에서는 일년에 한 번 수확하는 것을 실내에서는 네번 수확도 가능합니다.

나레이션
수직 농경의 개념을 도심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옥상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상상력이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그것은 지구의 온난화의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최고의 과학적 발명품이 될 지도 모른다.

닉슨 데스포미어(뉴욕 컬럼비아대학 미생물학 교수)
뭐든 생각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아이디어도 나쁜 아이디어는 없고, 다만 좋은 아이디어를 비웃는 것입니다. 발표한 아이디어를 비웃는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싫어하는 아이디어 일지라도 미웃지 않고, 고무시키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 해도 좋은 아이디어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접근이 좋습니다. 그런게 바로 관용입니다. 관용을 키워야 합니다.

창의력, 이야기, 꿈
이것들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기업문화에서 역시 기계처럼 일하는 부속품으로서의 조직원이 아닌 창의력을 북돋아 주고, 격려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일해왔는가. 클라이언트가 돈을 주면 "예. 감사합니다."라고 질질 끌려다니며, 촉박한 일정에 밤을 새워가며, 건강을 망쳐가며, 가정을 버려가며, 그리고 결국 삶이 피폐해져 가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기업도 그리고 기업에서 일을 받는 다른 기업도. 기업에서 일을 하는 조직원도. 지금과 같은 수동적인 태도와 억압된 위계질서, 상하계층구조를 통해서는 창의력이라는 미래 시장의 거대한 화두를 손안에 잡기 힘들 것이다. 자유가 방종이 아닐 수 있도록 그리고 동상이몽의 인간들이 모여 하나의 꿈을 이룰 수 있으려면,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문화가 생겨나야 할 것이고, 그 과정속에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이 뒤집기를 하는 것이 아닌 변화를 거쳐야 하는 것임으로 그 안에서 치열한 싸움과 분쟁과 설득이 끊이지 않고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없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개인도 기업도 사회도 그리고 국가도... 이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사람이 쓰는 것이며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다. 사람을 빼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행할 수 없는데, 사람이 중심에 없다면,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발 딛을 공간도, 함께하고 있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서로 존중하고 협업할 수 있는 "관용" 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별책부록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가 변하고 있다. 기업들도 무엇인가 변화를 꾀하고 있고 그 압박에 시달리는 많은 기업이 있는 것 같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고 있고, 국가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 한가지 확실 한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어떤 곳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는 듯 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 역시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안으로 밖으로... 그 경계에서 지금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지만, 변화 해야 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또는 'IT'라고 불리우는 산업의 구석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이 변화를 갑작스럽고 뒤통수 맞은 듯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유인 즉, 나름 최신 트랜드, 최신 기술이라는 산업의 전선(?)에 있음으로 사회의 변화의 물결이 바로 덮쳐드는 곳이기 때문 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늦은감도 있는 것 같다. 이미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건만, 나는 한곳에 우물안 개구리처럼 물이 썪어 가는 것도 모르고 발담그고 동동거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래에 다가 올 사회는 이야기를 파는 시장이 거대해 질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총도 없이 그리고 총알도 없이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협박과 회유 그리고 끝없는 반복의 싸움을 했다면, 이제는 내 머릿속의 상상을 팔아먹는 시장에 나를 내 놓아야 한다.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얼마전 누군가 이야기 했던 '일이란 영혼을 파는 것' 100%동의 하지 않았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마음을 판 적은 있었을 지언정 ㅡㅡ 생각 해 보니 더 나쁜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정말 나의 영혼을 파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저 다큐멘터리를 보고 들었다. 팔아먹을 영혼이 떨어지면, 진심을 팔아야 할까?(변영주 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내 영혼을 살찌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고, 이 쓰잘떼기 없는 공허의 공간에 진심을 던지는 짓은 정말 그만 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