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전 傳 - 12대, 400년 부자의 비밀 경주 최부자

 

기존의 경주 최부자에 대해서 아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본다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가고 있고, 지금의 정부도 국민들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보다는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고, 나머지는 소외되고 있는 느낌의 정책들에서...
경주 최부자가 자신의 곳간을 열어서 빈민을 구제했던 이야기가 지금의 노블리스오블리제가 어떤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러한 분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도 많이 벌면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약한 사람의 뼈꼴을 뽑아먹고, 탈세를 해가며 호위호식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음에는 분명하다....
어째 역사를 보면서 바른길로 가야지... 꺼꾸로 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던 방송이다...



[제52회] 12대, 400년 부자의 비밀
                       - 경주 최부자


▣방송 : 2008. 8. 2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류지열 PD
▣글.구성 : 김윤양 작가 

지금까지 이런 부자는 없었다!
12대(代), 400년간 지속된 부(富)!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경주 최 부자,
그 부(富)의 비밀을 파헤친다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사진>


왜 최부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인가?

경주 교동에 위치한 최 부잣집에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흉년이 되면 최부잣집에서는 자신들의 곳간을 헐어 양식을 나눠준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려는 것.
흉년은 부자들에게는 농토를 싼 값에 구입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최부잣집에서는 흉년에 절대 땅을 사지 않는다.
숙박시설이 여의치 않은 조선시대. 최부잣집은 수 많은 과객들의 쉼터였다. 어떤 손님이라도 극진히 대접. 노잣돈과 하루 양식 챙겨 보냈다.
특권층의 의무를 넘어, 사회 선을 실현했던 경주 최부자. 최부잣집은 한국 역사상 유례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로 손꼽히게 되었다.


      ▲ 최부잣집의 곡식창고                            ▲최씨 일가는 이곳 활인당 터에서
                                                                이웃들에게 죽을 쒀 나눠주었다.


최부자, 그들은 누구인가!

경주 최부잣집의 유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경주 최부잣집의 파시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왜군을 물리친 최진립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적들에게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6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감행. 아군이 수세에 몰렸지만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순국한다. 후에 최진립은 정무공의 시호를 받고 병조판서에 추증. 무신으로서는 드물게 용산서원에 모셔진다.


 ▲ 용산서원에 모셔진 최진립의 위패                        ▲최진립이 사용하던 검    

최부자,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양란 이후 피폐해진 조선 땅. 최부잣집에서는 관개시설을 확보. 이로 인해 새로운 농사법인 이앙법의 도입이 가능해지고, 투입되는 노동력을 크게 절감하게 된다. 또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다.
혁신적인 신농법의 도입. 지주와 소작인 모두가 함께 잘살고자 하는 상생의 원리! 이것이 경주 최부자의 부(富)의 비법이었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최씨 문중의 장손인 최준을 고민에 빠진다. 이에 백산 안희제 선생이 최씨 문중을 방문. 함께 백산상회를 운영해 상해 임시 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낼 것을 제의한다.
최준은 백산상회 대표로 활동. 일제의 치열한 감시 속에서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동생 최완을 대동청년단의 비밀요원으로 보낸다. 해방 후 김구는 최준을 경교장으로 초대, 최준의 노고를 치하한다.


 ▲백산상회의 대차 대조표


영원한 부자로 남는 법-기쁘게 버려라!

해방 후 인재양성에 뜻을 품게 된 최준. 그는 400여 년 간 모아온 전 재산을 영남대학의 전신인 계림대와 대구대에 기부한다. 세계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 모든 재산을 버렸지만, 경주 최부잣집의 이름만큼은 영원히 조선 최고의 부자로 전해지고 있다.

영남대학교의 전신 대구대학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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