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보고, 나는 쓰네...









네덜란드라고하면 생각나는 화가는 그저 고흐밖에 몰랐는데,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램브란트의 야경을 거의 최고의 국보로 친다고...
그의 그림속에 숨겨있는 다양한 비밀을 소개해 주고, 그의 그림의 뒷이야기까지 전달해준 방송...

정말 거작인 그림인데, 네덜란드 밖으로 나간적이 한번도 없다는데, 정말 꼭 한번 보고 싶다..

MBC 프라임 - 렘브란트, 천재화가의 삶, 빛과 어둠의 마법사


17세기 플랑드르(지도) 미술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렘브란트라는 거장을 배출합니다. 루벤스는 스페인 왕실이 지배하였던 벨기에에서 태어났으며,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출신입니다. 두 사람 모두 미술가로서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예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왕족과 교류하며 귀족의 명예를 끝까지 누린 루벤스와 파산과 가족의 죽음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던 렘브란트의 노정은 크게 대비됩니다. 두 미술가의 인생의 희로애락이 두 작가의 그림에도 배여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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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으로 더 잘 알려진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도8)은 1640년대 렘브란트의 전성기 시대에 그려졌습니다. 현대 전하는 이 그림은 화면의 양옆이 조금씩 절단되어 원작보다 다소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이전의 그룹초상화를 넘어서는 대담한 구성으로 마치 대규모의 역사화처럼 보입니다. 그동안 이 그림은 표면이 많이 더러워져 밤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왔을 뿐 아니라, 렘브란트가 이 그림으로 인해 주문이 끊겨 몰락하게 되었다는 오해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도8 렘브란트 < 반닝코크 민병대-야경으로 알려져 있음 >
1642년, 363×437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우리는 이미 할스가 떠들썩한 모임의 장면으로 그룹초상화의 어색한 느낌을 극복하였던 것을 보았습니다. 렘브란트는 그 이상을 그리고자 하였습니다. 설득하듯이 손을 내밀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 대원들은 야외에서 무기를 손질하거나 북잡이의 소리에 맞추어 정렬하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할스의 소란스러운 장면과 달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배경에 육중한 개선문을 세워 무대에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깃대와 행렬의 방향을 맞추어 다양한 화면의 움직임을 정리하는 섬세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환한 빛을 내는 소녀와 같은 비현실적인 모티프들을 이용하여 신화화나 역사화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고독한 미술가라는 렘브란트의 이미지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이 작품을 주문하였던 반닝 코크의 가족들은 그림에 만족하였습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 고급 주택가에 저택과 작업실을 마련하고 많은 조수와 제자를 거느렸으며 동방의 골동품이나, 판화, 미술작품을 수집하는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파산하였던 것은 모아들인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하였던 데 더 큰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남부 플랑드르와 달리 종교화의 주문이 거의 없었던 점을 생각해 볼 때 렘브란트의 종교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매우 독보적인 것입니다. 그의 종교화는 자신의 경험과 이웃이었던 유태인들과의 교류,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런점에서도 렘브란트는 종교화가 많이 그려지지 않던 네덜란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루벤스의 안트워프 성당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도3, 10)은 너무나 유명하였으며 렘브란트도 이 그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 주제를 다시 그리고 싶었습니다(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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