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의 귀재 김서기, 축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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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말이... 어릴때 무일푼으로 버스에서 물건을 파는 일부터 시작해서 부산의 명물 영타운을 만들고,
건물주인의 욕심으로 영타운을 접고 서울에 올라와서 허름한 주택가에 호프집을 만들어서 6개월만에 성공 시키고, 본격적으로 체인점사업에 뛰어든 김서기 사장...
중간에 실패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이런 저런 시련이 많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고통은 더 좋은 현실을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오 다시 재기하는 그의 삶의 태도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쪼끼쪼끼 돌풍 일으킨 '부산촌놈'
사업 2년 6개월만에 330호점 개설, 아이디어, 도전정신으로 성공
지금으로부터 12년전, 부산 번화가인 서면 1번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 주인과 김서기 (주)태창가족 사장 (44, 당시 무직)이 마주앉았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 주시오, 생맥주집을 차려 부근 땅값을 올려놓겠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한마디로 잘라 거절한 건물주인이 한달쯤 뒤 사람을 보냈다. '지하 1층을 빌려줄테니 한번 해봐라, 서너달 하는 걸 봐서 잘되면 지상4개층도 임대해 주겠다'는 전갈이었다.
부산 자갈치시장을 무대로 고기상자 납품업에 손을 댔다가 가진 돈을 거의 날린 김사장 압장에서는 하늘이 준 기회였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생맥주집 '영타운'은 엄청난 판매량으로 부산지역 맥주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하루 2만cc짜리 50통을 꾸준히 팔아 월 3,000만원 정도의 순익을 남겼을 정도로 성공했다.
"별다른 요리기술이 없어 맥주사업에 손을 댔고 '무료 임대 제안'도 사업 실패뒤 사업자금이 없어 제안했다"는 김사장은 99년 6월 서울로 올라왔다. 기왕에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큰물'에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쪼끼 쪼끼 생맥주' 프랜차이즈 사업은 대박을 터뜨렸다. 가맹점 확장을 본격 개시한 2000년 6월이후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330호점을 개설할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단순히 양적으로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김사장은 "가맹점 한달 평균순익이 700만~1,000만원대"라고 밝혔다. 가맹점 성공률도 80~90%를 자랑한다.



김사장은 스스로 '부산촌놈'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다.
게다가 그가 서울에 올라온 99년은 아직 IMF의 쇼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절이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쪼끼쪼끼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뭘까.
부산 '영타운'에서 성공했던 것처럼 쪼끼쪼끼 사업도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이 빚어낸 작품이다.
그의이런 정신은 몸에 배어있다. 가령 골목길을 찾아다닐때도 같은 길을 두 번 가지 않는다.뿐만 아니라 가끔 내의를 뒤집어 입고 다닌다. "똑같은 걸 반복해서는 새로운 것을 찾을수 없다"는 것이 그가 직원들에거 늘 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보통 맥주전문점의 A급 입지는 직장인들이 많은 사무실 밀집지역이나 대학가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사각지대로 알려진 주택가를 파고 들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경쟁 체인점들의 매장 크기는 최소한 50평을 넘었지만 20평 규모의 소형 점포를 고집한 것도 같은 경우다.

당시 생맥주 납품업체 관계자들은 "불황엔 목 좋은 곳에서도 힘들어 하는데 주택가 골목길이라니..." 라며 혀를 끌끌 찼을 정도였다.
주변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한번 지켜봐 주십시오"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속으론 자신감이 넘쳤단다.
"주변에선 반대했지만 저는 '신대륙'을 발견한 겁니다. 아무도 넘보지 않는 땅에 제가 먼저 깃발을 꽂았다고 할까요, 가령 부부가 저녁에 맥주 한잔 하려고 집을 나섰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두컴컴한 실내에다 치킨냄새가 진동하는 동네 맥주집에서 분위기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시끌벅적한 대학가나 시내중심지로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깔끔한 인테리어에 환한 조명,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손님은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적중한 것입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생맥주 납품업체에 "일단 5개점포를 연뒤 상황을 지켜보자"고 제안하고 99년 12월 서울 성내동에 1호점을 열었다.
1호점은 유동인구가 적어 2년째 비어있는 최악의 입지였다. 나름의 전략적 고려와 오기기 섞인 선택이었다. 1호점에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였다.
1호점에서 그는 '영타운'의 성공 때처럼 갖가지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우선 가족이 함께 찾을 수 있도록 건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흰색벽과 밝은 조명, 사진액자등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지중해풍의 인테리어를 추구했다.



맥주의 맛을 높이기 위해 맥주통 관의 내부를 씻어내는 살균세척기를 도입하고 잔 자체도 영하 20도에서 꽁꽁얼려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있도록 했다.
그기 전략적으로 사활을 걸었던 1호점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시내 중심가의 업소에서나 가능하다는 하루 5통의 판매량을 거뜬히 해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맥주맛도 만들어냈다.

커피 생맥주, 오미자생맥주,그린생맥주, 한방생맥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신개념의 맥주는 가족단위의 고객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별히 매체광고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쪼끼쪼끼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10여개의 유사상호 브랜드가 버젓이 신문에 광고를 내며 영업을 할 정도로 쪼끼쪼끼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가맹점은 늘리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법, 짧은 기간에 가맹점을 100~200개로 늘렸다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김사장은 요즘 "가맹점주들이 따라와주지 않을때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당연히 가맹점 확대보다 '유지 및 관리'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수성전략은 한마디로 "폐점할 곳은 과감하게 폐점한다."는 것.
"프랜차이즈 사업은 무엇보다 통일성이 중요합니다. 가령 서울에서나 부산에서나 동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점주가 개별적으로 행동할 경우 경고장을 보내는 동시에 재교육을 하고, 그래도 안 따라오면 폐점을 시키는 것이 다른 가맹점을 살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사업실패로 인해 빈털털이 신세였던 그가 10년만에 프랜차이즈 업계의 입지전적인물로 자리매김했지만 "아직 꿈이 많다."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 꿈이란 (주)태창가족을 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연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일류기업으로 발전하는 것" 이 목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별도의 전담팀을 두고 새로 진출할 업종을 모색하고 있는 김사장은 "고객의 요구에서부터 고민을 진행하고 있다." 며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슬쩍 물었더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자만이 성공이든 실패든 답을 얻을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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