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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최신규, 여의봉을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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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퇴에 어머님은 시장에서 행상을 하시고, 어렸을때부터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하다가
자신의 길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코스닥에 상장까지 시킨 손오공이라는 완구사업 및 최근에는 엔터테이먼트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는 최신규씨의 성공 스토리...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을때의 기존 업체이 군림하는곳에 본인만의 마케팅, 영업전략을 개발해서 뛰어드는 부분은 많이 본받아야 할것같고, 박리다매 방식으로 100원짜리 장난감을 팔아서 몇달만에 40억을 벌어들인 이야기 등.. 흥미진진하구만...
점점 출퇴근길에 엄길청의 성공시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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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을 터뜨린 사람들]④'여의봉을 든 손오공' 최신규 손오공 사장


가난ㆍ못배운 恨에 이 악물었다

19살에 밑바닥서 사업 시작… 요술 부리듯 무한한 상상력 발휘

아이들 눈높이 맞춘 '탑블레이드' 大히트… 한국 대표 완구社로

최신규는 손오공이다. 여의봉으로 요술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구름을 타고 단숨에 10만리를 날아오르는 손오공. '81난(難)' 끝에 불전을 구하는 손오공. 최신규 사장(48)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요술 같은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린다. 회사 이름도 손오공이다. 그는 여의봉을 '꿈'으로 읽는다.





'기업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남의 집 고용살이에서 출발, 세계적인 가전왕국 마쓰시타를 일궈낸 신화적 인물. 그는 '가난, 허약한 몸, 못배운' 세 가지 은혜를 성공비결로 꼽았다. 가난은 부지런함으로, 허약한 몸은 건강의 중요성으로, 못배운 것은 세상 모든 이를 나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성공의 코드로 바꿨냈다. 마쓰시타 회장의 어법을 빌리면 최 사장은 '튼튼한 몸'을 빼곤 두 가지 '은혜'를 입은 셈이다.


열셋에 염산 냄새를 견뎌내며 금 세공일을 하고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던 소년이 거짓말처럼 1000억원 매출을 눈纜?둔 회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만든 제품만 1000여개, 특허 300여개, 탑블레이드로 대표되는 한국 완구업계의 대표적인 대박, 코스닥 입성을 눈앞에 둬 거부(巨富) 반열에 오르게 될 최 사장은 삶의 행로는 평균인의 궤적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그는 여의봉으로 오늘도 꿈을 꾼다.



◆가진 것이 없어서 성공했다=최 사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밑바닥에서의 출발이 오히려 그를 오늘날 '손오공, 최신규 사장'을 만들어냈다.


세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가난을 못이겨 그를 시골 큰형님 집에 맡겼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외로움. 학교 다닐 형편이 안됐던 그는 폐건전지를 만지작거리며 장난감 삼아 놀았고 온갖 상상력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공부보다 기술에 뜻을 둔 그는 열셋부터 금은방에서 금 세공사로서 일했다. 매일 독한 염산 냄새를 맡아가며 18시간이 넘게 일하는 고된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이때 배운 금 세공기술 덕분에 나중에 다른 기술을 익히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금 세공사로서의 일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금도둑의 누명을 쓰고(나중에 아닌 것으로 밝혀짐) 금은방을 나온 그는 영등포 뒷골목을 헤매며 방황했다. 다행히 지금은 목사가 된 장애인 친구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려 선반과 주물기술 등을 닥치는 대로 익혀갔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팔다리 멀쩡한 네가 나보다 못한 게 뭐 있냐고요."

사실 최 사장의 어릴적 꿈은 판ㆍ검사였다. "텔레비전에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병철 회장 등을 보면서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판ㆍ검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육법전서를 보면서 고시공부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한계에 봉착했고 결국 공부보다는 기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학업에서 기술로 인생의 방향을 틀고 1974년 열아홉 나이에 셋째 형과 수도꼭지 만드는 협성공업사라는 회사를 세웠다. "가진 것 없는 제가 학교는 못다니니까 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명예는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회사는 30년 뒤 손오공이라는 회사를 만드는 출발점이 됐다.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열등감이 오히려 성공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게 했고 30년이 지난 오늘, 손오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던지는 한마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만 만든다=그는 일찌감치 눈높이를 어린아이에게 맞췄다. 철저히 고객입장에 선 것이다. 항상 아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살펴보고 직접 만들어서 초등학생인 막내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완구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만든 것은 절대 안됩니다." 그래서 나이 50에 가까운 그이지만 만화책은 물론 TV 개그프로그램 보는 것을 즐긴다. "젊은 세대는 빠릅니다. 속도감 있는 젊은 세대의 빠른 감성코드를 읽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최 사장은 '아이디어맨'이다. 수도꼭지에서 야외용 가스레인지, 그리고 각종 완구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제품만 1000여가지가 넘는다. 따낸 특허만도 300여개. 끈끈이와 탑블레이드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완구는 모두 작은 아이디어와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었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는 사업을 지탱해주는 손오공의 여의봉인 셈.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장 집무실에서도 항상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디어 발굴에 힘썼다. "어린아이들이 컴퓨터만 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밖에서 놀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혼자 있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놀까 생각하던 것을 시대에 맞게 바꿔주면 훌륭한 완구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난 사업에 미쳤었다=최 사장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왔다. 사업하느라 신혼여행도 포기했고 가족간의 휴가도 없었다. 돈을 좀 벌어도 남들처럼 집을 사기는커녕 오히려 공장에 재투자했다. 사업자금이 부족해 전세금과 결혼반지 등 전 재산을 쏟아붓는 바람에 돌도 안 지난 어린딸을 업고 신혼 초 여관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처가 친지로부터 원망도 많이 들었다.

"사실 전 사업에 미쳤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업기반부터 닦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중은 그에겐 재미였고 그 때문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편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고생아닌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다만 전 제일을 고생이라기보다는 재미로 받았들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팽이로 꿈을 돌리다=손오공의 최대 히트상품 탑블레이드. 탑블레이드는 팽이의 21세기 버전이다. 팽이(top)에 칼날(blade)을 단 장난감. 최 사장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어렸을 때 팽이를 돌리면서 놀았죠. 그걸 시대에 맞게 바꾼 것입니다."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팽이를 오늘로 가져온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라는 팽이의 기본 틀은 변함이 없다. 여기에 회초리로 치는 게 아니라 줄로 당기면 팽이가 발사되고, 빠른 속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곧바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21세기를 덧붙인 것이다.


'팽이라니' 하며 처음 주위의 반응이 냉담한 것은 당연한 일. "지금 안 하면 내일이 없다"고 설득하면서 밀어붙였다.

이때 생각한 게 일본과 합작. 한국과 일본은 노는 문화가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도 생각이 미쳤다. 애니메이션, 완구, 게임을 함께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생각한 것이다. 총 제작비 60억원 중 20억원을 손오공이 투자했다. 최 사장 입장에서는 '올인'이었다.


"일본에서 먼저 만화영화를 방영해본 뒤 반응을 보기로 했습니다." 2001년 2월 일본에서 먼저 '베이 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만화영화가 상영됐고 주인공들이 갖고 놀던 팽이완구도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한국에서 완구를 내놓자마자 사무실은 주문전화로 가득했고 인천 공장을 24시간 돌려도 주문량을 맞추지 못했다. 중국산 모조품이 들어올 정도였다.


만화 주인공이 'GO! GO! 탑블레이드'를 외치듯 손오공도 질주했다. 탑블레이드 한가지로 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컴퓨터 게임용 탑블레이드가 출시돼 3주 만에 5만장이 팔리는 빅히트를 기록했고 캐릭터를 이용한 '탑블레이드 빵'까지 나오는 등 팽이를 기반으로 한 '원 소스'로 1000억원대에 가까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2001년 출시 이후 52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망하지 않는 한 나도 잃지 않는다=그는 투자에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돈만 갖고 있는 사람과 기술이 있는 사람의 눈은 다릅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투자하는 데 자신이 있지만 돈만 있으면 투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부도나지 않는 한 손오공도 부도가 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최 사장은 애니메이션 '오세암'에 투자했다. "사업가의 눈으로 보면 종교적으로 얘기가 흐르면 안되죠. 불교를 배경으로 한 오세암의 경우 교회에 다니는 부모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죠. 창투조합에 들어 있어 6억원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저는 반대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돈만을 생각해 투자하지 않는다. '연지' 인형이 대표적인 예. '후배들이 이어갈 기반을 닦아주기 위해서 한국형 인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한국산 인형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을 동원한 철저한 고증을 했고, 하나 하나 다림질과 바느질을 해가면서 한국형 인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적자였지만 지금은 흑자로 돌아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장난감 애프터서비스(AS)를 한 것도 당장은 손해지만 멀리 본 투자였다. 장난감이 망가지면 또 사준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절반도 안된다. 텔레비전처럼 AS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택배비로만 수억원이 나가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매출이 오른다는 것이다.

정리=전창협ㆍ권남근 기자(jljj@heraldm.com)

사진=이존환 기자(nani@heraldm.com)

[내 인생의 한컷]강도에 부도설 등 시련

용기ㆍ자신감으로 극복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0년 3월 29일 아침이었습니다. '탑블레이드'의 성공에 들떠 있을 무렵 전혀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쳤습니다. 집에 강도가 들었던 것입니다. 5명의 괴한이 집에 들이닥쳐 아내에게 흉기를 대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차를 고치러 떠난 것을 보고 강도들이 제가 출근한 줄 알고 들어왔던 것이죠. 겁에 질린 아내의 비명. 몸이 오싹했지만 순간 내가 이 자리를 떠나면 '나중에 어떻게 집사람을 볼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내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번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판 붙어야겠다는 직감이 들더군요. 여전히 강도들은 계속 아내를 볼모로 잡고 협박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들고 무조건 덤벼들었죠. 순순히 포기할 줄 알았다가 내가 막상 싸우자고 달려드니 오히려 당황하더군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습니다.

30분이나 지났을까요. 야구방망이는 부러졌고, 휘두르는 칼을 온몸으로 막는 과정에서 손과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됐습니다. 피는 철철 흘러 넘쳤고 전 정신을 잃고 쓰러졌죠. (손과 얼굴의 흉터자국을 가리키며) 이곳이 바로 그때 다친 상처입니다. 이 사건으로 아내는 1년 동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요. 강도사건 이후 아무 문제 없던 회사엔 부도설이 나돌았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얼마 후 회사에 도둑이 들어 금고를 털어가는 절도사건까지 났다고 하더군요. 강도, 부도, 절도로 이어지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아내와 회사를 위해서라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고, 남몰래 마사지를 받으며 몸도 추스렸습니다. 몸은 으스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텼습니다. 학연도 돈도 없던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자신감뿐이었습니다. 아내도 저의 이런 강인함을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완전히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10대: 1956년생이다.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이 가난해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13세부터 금 세공사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학교는 기술을 배우는 틈틈이 다녔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다. 방황도 있었다. 꿈은 판ㆍ검사였지만 일찌감치 접고 19세에 형과 함께 수도꼭지 만드는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20대: 주말도 없이 일했다. 79년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이 쓰러졌고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83년 개봉동에 서울다이캐스팅을 차려 야외용 가스레인지와 녹즙기를 만들었다. 85년 서울화학이라는 장난감 공장을 차렸다. 끈끈이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30대: 90년 서울양행을 만들어 장난감 자동판매기사업에 뛰어들었다. 92년 서울화학과 서울양향을 합병해 손오공을 설립하고 장난감 로봇에 집중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일본 2위 완구업체인 다카라와 기술제휴도 맺었다. 판로가 없어 위기에 봉착했으나 젊은 상인들을 모아 완구총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95년 '연지'라는 브랜드의 한복 인형도 출시했다.

△40대 오늘, 그리고: 완구시장 확대를 위해 애니메이션(만화영화) 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96년 '영혼기병 라젠카'를 비롯해 5년간 160억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이후 만화영화 '하얀마음 백구'를 성공시켰고 2001년 일본과 함께 팽이를 소재로 한 '탑블레이드'를 제작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완구 탑블레이드도 날개 돗친 듯 팔려나갔다. 지난해 매출액 68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엔 정부가 인정하는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올 3월엔 한양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조만간 코스닥에도 등록할 계획이다. 앞으로 손오공을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을 총망라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로 키울 생각이다.

최신규의 성공코드


◆팽이: 팽이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아침 5시면 일어나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온다. 스스로 일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팽이를 돌리듯 일이 재미있다.


◆로봇: 94년 히트상품이었던 변신 로봇 '그레이트 다간'처럼 변신을 자주한다. 금 세공에서 출발해 수도꼭지, 장난감, 요즘 들어 애니메이션, 게임, 레저까지 젊은 세대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한다.


◆인형: 돈이 되지 않는다고 말리는 전통인형을 만들었다. 한국을 알리고 한국 인형의 맥을 잇겠다는 사명감에서 출발한 일이다. 한땀 한땀 인형을 만드는 정신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만화: 인생이 드라마다. 가난, 배고픔의 유년시절을 보냈다. 열아홉에 회사를 만들었다. 잘 나갈 즈음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다.


◆끈끈: 생애 최초의 히트작이 '끈끈이'다.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본다. 8개월을 쏟아부어 끈끈이 개발에 성공했다. 내 인생도 끈끈하다.


◆백구: 애니메이션 투자의 성공은 '하얀마음 백구'부터다. 흰둥이처럼 순수하다. 항상 어린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어린이처럼 생각한다. 만화와 개그가 취미다.


◆요술:여의봉처럼 아이디어로 뚝딱 장난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손만 거치면 옛날 팽이도 탑블레이드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1000여개 제품을 만들었고 300개 특허를 따냈다.


◆동화='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지원하고 있다. 동화처럼 가슴에 와닿는 일을 하고 있다.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세상을 꿈꾼다. 좌우명도 효(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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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험왕, 조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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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적일정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농사를 짓다가 실패하고 형의 권유로 죽지못해 시작한 보험으로 연봉 5억을 받는 조주환씨...
김포지역에서 자동차보험중에 10명중에 1명은 조주환씨의 고객이란다.
다른면보다 고객지원, 고객과의 약속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철저하다.
위의 만화와 같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감언이설로 고객을 유혹해서 계약을 따놓고는 실제적으로는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조주환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객감동이라는것이 이런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지킨다는것... 참 쉬운 말이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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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의 총각네 야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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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평당 최고의 매출액을 올린다는 이영석의 총각네 야채가게.. 책도 읽었고, TV에서 강의하는것도 보고, 각종 기사도 많이 봤는데, 또 성공컨설팅에서도 만났다.
많이 들어도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들었다...-_-;;
사회자인 엄길청씨도 혀를 내두를정도이고, 대단한 인물로 평가한다. 이것저것 배울것이 많이만 그의 강한 정신력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 것같다.
최근에는 LG전자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총각네 야채가게와 업무제휴를해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암튼 살면서 언제라도 좋지만 나태해지거나 힘들어질때 힘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의 야채 가게에는 하루에 천 여 명의 손님이 온다.

겨우 18평 규모에 품목도 과일·야채·어물로 한정되어 있는데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들르는 것이다.

물건을 매장에 다 들여놓지도 못하고 앞에 쌓아 두었지만 그것도 모자라 다시 시장에서 들여와야 할 정도다. 10년 전 트럭 한 대로 무점포 행상을 시작했던 이영석은 이제 야채 장수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도대체 무슨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한 이영석이 한 이벤트 회사에 들어갔을 때였다. 한번은 며칠 밤을 새우며 작성한 기획안을 선배가 가로채는 일이 벌어졌다.

이벤트 업계에서는 원래 기획안 표절, 뒷거래 등이 많았다. 일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정직한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한강 둔치로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오징어를 실은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오징어를 팔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징어 행상에게 부탁해서 원가로 오징어 2만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오징어 사세요!”를 외치며 돌아다녀 30분 만에 다 팔았다.

다시 오징어를 떼다가 팔자 8만 원이 수중에 떨어졌다. ‘장사야말로 정직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이영석은 그 오징어 행상을 무작정 1년 여 동안 따라다니면서 장사를 배웠다.

1994년 그는 독립하여 1톤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또 좋은 야채와 과일을 고르는 법, 보관하는 법, 팔다 남은 물건을 처리하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해 상인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상인들이 귀찮다며 뿌리치고 때리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지방의 무슨 과일이 좋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갔다.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 보기 전까지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 가락시장에서 ‘칼잡이’로 불리다
그가 처음 트럭 행상을 다닌 곳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이었다. 이영석의 트럭이 자리잡고 손님을 모으자, 근처 노점상에서 몇 명이 와서 시비를 걸었다.

트럭에 실린 야채와 과일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다음날은 아예 이영석을 두들겨 팼다. 그래도 이영석은 꾹 참고 다음날도 그 자리로 트럭을 몰고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위 노점상에서 구청 단속반에 이영석을 고발했다. 다른 노점상들은 단속이 시작되는 걸 미리 알고 자리를 떴지만, 이영석은 야채와 과일을 빼앗기고 그걸 찾아오는 데 벌금 20만 원을 물어야 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이영석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결국 근처 노점상들과 구청 직원들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이영석은 일명 ‘칼잡이’로 통한다. 이 별명을 얻게 된 과정에는 오늘날 이영석이 야채 장수로 성공하게 된 이유가 담겨 있다.

이영석은 초창기에 과일이나 채소를 모양만 보고 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품질이 많이 떨어져 속이 상하곤 했다. 과일을 사면 박스 밑바닥에는 썩고 상한 과일들이 깔려 있기도 했다.

팔지도 못하고 바로 갖다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영석은 자신이 직접 맛을 보고, 상자를 뒤집어 밑바닥의 과일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에 과도 하나 달랑 들고 가락시장으로 간 이영석은 1500개의 과일 도매 가게를 차례로 방문해 과일을 쪼개 맛을 보았다.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상에서는 원래 맛을 보고 사는 법이 없었다.

사든지 아니면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영석은 멋대로 맛을 보고, 과일 박스를 뒤집어서 바닥에 있는 과일의 상태를 살폈다.

맛이 없으면 과일 값도 안 치르고 그냥 가 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도매상인들이 그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영석을 흠씬 패 주었다.

이영석은 대들지도 않고 그냥 맞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나가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도 맞다 보니 집에 가면 온 몸이 뻐근했다.

새벽 2시에 자명종 소리가 들려오면, 몸이 아프고 잠이 부족한 건 둘째치고, 다시 시장에 나가서 두들겨 맞을 걸 생각하니 그대로 주저앉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마침내 상인들이 그를 인정했다. 이제는 과도를 휘날리며 시장을 돌아다녀도 그를 제지하는 상인이 없다.

이영석은 한 번 구매하면 대량을 구매하며, 결제도 현장에서 바로 해주기 때문에, 상인들이 모셔야 할 고객이 되었다.

이제 상인들은 멀리서 이영석이 오는 것만 보아도 불안해지고, 그가 칼을 들어 과일 맛을 볼 때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맛이 없으면 도매 상인이 맛이 없다고 먼저 털어놓는다.




■ 재고율 0퍼센트에 도전한다
이영석이 과일을 고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롭다. 확실히 맛있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다.

다른 상인들은 겉모양만 봐도 70~80퍼센트는 과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영석은 모양으로는 50퍼센트밖에 판단할 수 없고, 맛을 보아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을 대표해 시장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차피 팔지도 못할 터, 구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곱 시간 동안이나 과일을 이것저것 맛보다 보면 화장실도 여러 차례 들락거리게 된다. 또 여러 가지 과일을 맛보기 위해서는 종종 생수로 입을 헹구어야 한다.

입맛을 지키기 위해 담배나 술은 결코 입에 대지 않는다. 청량 음료를 비롯해 자극적인 음료수나 음식은 되도록 삼간다.

또 아침에 배고픈 상태에서 과일을 먹으면 다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반드시 배를 채우고 나간다. 새벽에 하도 과일을 많이 먹다 보니 다른 데서는 과일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술집에서 과일 안주가 나오면 바로 마른 안주로 바꾼다.

이영석은 하루에 열 여덟 시간을 일한다. 새벽 2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에 나갈 채비를 차린다. 3시에 가락시장에 도착하면 일이 바로 시작된다.

일곱 시간 가량 발품을 팔아 과일과 야채, 생선을 고르고 구매를 결정한다. 구매가 다 끝나면 가게로 돌아가 직원들과 장사를 시작한다. 6시면 영업이 끝난다. 그러면 간단한 회의를 하고 그 날을 마감한다. 서두르면 8시, 늦으면 10시에나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한편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재고가 없다. 그렇다면 그 날 들여올 분량을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주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시금치·단무지·김 등을 많이 들여놓는다.

주변 아파트에서 바자회가 열린다고 하면, 거기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구매 수량을 줄인다. 비가 온다고 하면 부추나 파를 더 많이 구매한다. 파전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 가게에서는 그 날 팔 수 있다고 생각한 양의 90퍼센트만을 구매한다. 예기치 못한 변수로 팔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고가 있으면 주변 식당에 저렴하게 판다. 그렇게 모든 상품은 재고 없이 완전히 그 날로 소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게는 생선을 취급하지만 그 흔한 냉장고가 없다. 모든 생선은 그 날을 넘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 입원하면 병원에서 출퇴근한다
손님들은 다른 행상이나 가게에 가면 더 싼 과일이나 야채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영석은 다른 가게에서 팔지 못하는 것을 팔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서 사면 뭘 사도 품질이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기에, 가격 때문에 다른 데서 물건을 사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손님은 품목은 고르지만 품질은 고르지 않는다. 과일이나 야채의 상태를 잘 묻지 않는다. 살 것을 선택하면 가격을 치르고 가 버리는 식이다.

여기서는 가격을 깎아 주는 일이 없다. 다른 가게에서는 깎아 달라는 흥정이 자연스럽지만, 이 곳에서는 처음 오는 손님이나 가격 흥정을 벌인다.

고정 고객은 이 가게가 마진을 특별히 많이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흥정을 아예 하지 않는다. 가격을 깎아 달라고 하면, 덤을 얹어 줄지언정 깎아 주지는 않는다.

늘 최상의 품질을 우선하지만 고객 항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손님이 제품을 잘 보관하지 못하여 벌어진 일인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에도 100퍼센트 교환·환불 처리를 해준다. 먼저 환불을 해주고 나서,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이름은 이 가게 직원들이 다들 총각이라고 해서 고객들이 붙여 준 애칭이다. 이처럼 손님과는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낸다.

대부분 주부들이 이 곳을 찾는데, 직원들은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친근하게 대한다. 그냥 가게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직원들은 고객 카드를 작성하지 않고도 수백 명의 손님을 기억하고 있다.






총각네 야채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1년에 200여 명이 일하겠다며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즐겁게 일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일 외에도 어렵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야채 가게에 대한 낮은 인식이다. 이영석은 야채 장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야채를 파는 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다. 일정한 경력이 쌓인 직원에게는 새로운 점포를 차려 주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해외 연수도 보내 준다. 현재 여덟 개의 야채 가게가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상호를 쓰고 있다.

힘들어하는 직원에게는 과감하게 휴가를 준다. 하지만 이영석은 일요일을 빼고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렇다고 몸이 강철 같아서 결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위염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입원해야 할 정도였는데, 병원에 누워 있다가도 새벽에는 가락시장으로 나가서 물건을 고르고 사들였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누웠다. 그렇게 15일 동안 병원에서 출퇴근하니까 나중에는 병원에서 그만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맹장 수술을 받았을 때도,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을 이틀도 채 안 돼서 퇴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에 대한 프로 근성이 강하다.




■ 쉽게 성공하려 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 동안 다른 상인들에게 숱하게 맞으면서도 남다른 승부욕으로 버텼던 이영석.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젠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일 하면서 고생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가 들 때면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영석은 원래 장사 기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쓰던 전자 제품이나 자전거 등을 샀다가 가격을 얹어서 팔곤 했다. 동아리에서 티셔츠를 맞출 때는 자신이 나서서 동대문 시장에 가서 싸게 맞추고 마진을 남기기도 했다.

장사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영석은, 어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 일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즐길 수 없는 일은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일을 즐길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라고 조언한다.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영석의 생각이다. 하지만 ‘하던 일을 어떻게 쉽게 바꾸겠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 대해 이영석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건 용기가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전 각종 레포츠를 즐기는데, 스쿠버다이빙을 1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스쿠버다이빙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가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일을 해주고 대신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골프가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전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용기입니다.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영석은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대리점주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다른 몇몇 회사에도 강연을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교육이나 좋은 강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길은 이미 다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서점에만 가도 온갖 길을 알려 주는 좋은 책이 넘쳐난다고 했다.

다만 한 번 듣고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석 자신도 배움에 그치지 않고 뭔가 자꾸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분야든지 과포화 상태입니다. 도화지에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흰색 도화지여서 점을 찍으면 점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검정색 도화지라서 검정색을 찍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나’라는 색을 드러내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노력과 색다른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검정색 속에 묻히면 안 됩니다.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쉽게 얻으려고 하니까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글_조원기(wk@successpartner.co.kr)


LG전자와 '총각네 야채가게' 업무 제휴 효과 만점
'즐거움'과 '선진 경영기법'의 접목, 공동 마케팅 전략으로 윈윈 효과 거둬










대한민국 굴지의 가전업체가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야채가게와 전략적 업무 제휴를 했다. 사람들은 이 소식에 언뜻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다. ‘대기업이 뭐 아쉬울 게 있다고 조그만 야채가게와 손을 잡을까?’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는 역시 뭔가가 있었다. 양측은 요즘 찰떡 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세간에 화제를 뿌리며 마케팅ㆍ유통 부문의 포괄적 업무 제휴를 맺었던 LG전자(대표이사 김쌍수 부회장)와 총각네 야채가게(대표이사 이영석 사장ㆍ이하 총각네)의 동거 실험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두 회사가 최근 밝힌 그 동안의 제휴 실적을 보면 양측의 선택은 절묘한 윈윈 전략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두 회사의 제휴는 LG전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뤄졌다. 야채가게로 대박 신화를 쓴 총각네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 LG전자 측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특히 총각네를 직접 방문한 김쌍수 부회장은 신선한 야채뿐 아니라 ‘즐거움’을 함께 판다는 이들의 발상에 크게 매료돼 “우리 가전 매장도 전부 총각네처럼 만들어라”며 특별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프라자 대방점 공동 매장으로 개조
두 회사는 제휴를 맺은 직후 우선 LG전자의 직영점인 하이프라자 서울 대방점을 공동 매장으로 개조해 문을 열었다. 양측 모두 주부가 주고객층이라는 점에 착안, 서로 손님을 주고 받는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리자는 공동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다. LG전자로서는 매장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총각네 직원들의 남다른 고객 응대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또 다른 기대감도 있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동 매장을 운영한 지 두 달여가 지난 2월말까지 성적표가 이를 말해준다. LG전자에 따르면 하이프라자 대방점은 지난 1~2월 두 달간 약 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의 판매 신장을 달성했다. 올 들어 내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총각네와의 동거가 매출 증가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물론 대방점 직원들의 고객 응대 방식이 바뀐 게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직원들은 처음엔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총각네 야채가게의 분위기에 다소 적응하기 어려웠으나, 이내 그들에게 동화됐다. 아침 조회 때 매장 안을 속보로 몇 바퀴 돌며 활력을 충전한다든지, 매장 밖으로 나가 출근길의 행인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미소 짓기 운동, 제품 특성 알아맞히기 릴레이 등도 근무 방식에 불어온 새 바람이다.

하이프라자 대방점 강영준 주임은 “가장 달라진 점은 직원들의 마인드 변화”라며 “그 결과로서 고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제품 설명도 더욱 친절하게 하는 등 적극적인 영업 방식이 몸에 익게 됐다”고 최근 매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제휴에 깊숙이 관여 중인 LG전자 정호선 부장도 “총각네는 주부 고객들을 어머니로 부르며 살갑게 대하거나 늘 즐겁고 활기찬 매장 분위기를 연출한다”며 “이런 영업 컨셉트를 받아 들인 우리 직원들의 행동 양식과 마인드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각네도 만만치 않은 소득을 얻고 있는 중이다. 당초 총각네는 비(非)강남권에 처음 점포를 연다는 사실에 대해 적잖이 부담을 느꼈다. 신선함과 즐거움을 무기로 강남권 주부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바 있지만, 다소 비싼 가격이 비강남권 주부들에게는 먹히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달여 영업을 한 결과, 이는 기우로 드러났다. 처음에 하루 100명을 밑돌던 손님 숫자가 최근 평균 300명을 웃돌 정도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총각네 대방점 한일용 팀장은 이와 관련해 “대방동 지역의 시장성을 불투명하게 봤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 특유의 서비스 정신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인지 손님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가 주고객층, 매출 증가로 이어져
총각네는 비강남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 외에도 또 다른 과실을 얻었다. LG전자의 선진화된 경영 노하우 등을 접할 수 있?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영석 사장은 “우리 직원들이 LG전자의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게 된 것 등은 적지 않은 소득”이라며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제휴의 범위를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총각네를 공동 매장에 입점시키면서 비용적인 부담도 크게 덜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달여 만에 짭짤한 성과를 낸 두 회사의 공조는 한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공동 매장을 5~6개까지 늘려 나간다는 계획인데, 우선 공동 매장 2호점이 3월 19일 서울 가양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LG전자는 나아가 직영점과 대리점을 합쳐 700개를 훌쩍 넘는 전국의 가전 매장 전체에 총각네의 근무 방식과 기업 문화를 이식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각 매장의 직원들이 총각네를 자연스레 벤치마킹 하도록 공동 판촉 행사를 벌이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가전과 야채의 동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총각네 야채가게
연 매출액 200억원의 유통기업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사장은 새벽 농산물 시장에서 손수 고른 물건을 그 날 모두 판매, 재고율을 0%로 유지하는 영업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 왔다. 언제나 신선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만 고객에게 팔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장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면 고객도 즐거워하고 결국 장사가 잘돼 직원들이 다시 즐거워진다는 이른바 ‘펀 사이클’(Fun Cycle) 철학에 따라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1998년 보잘것없는 5평짜리 야채가게로 사업을 시작했던 그가 불과 6년 만에 10개 점포를 거느린 연 매출액 200억원의 유통 기업을 일군 비결이다.

이 사장의 경영 방침은 총각네 야채가게 매장 어디를 가봐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LG전자와 공동으로 영업 중인 대방점도 마찬가지다. 보기에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야채와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는 것은 물론, 이를 판매하는 직원들의 입담과 제스처가 고객들의 웃음을 절로 자아낸다.

“어머니, 많이 팔아주세요. 미나리 팔아 총각들 장가 밑천 마련하려고 합니다.” “야채와 과일을 사시면 총각들의 열정과 마음도 드립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아니 원숭이에게 내린 마지막 선물이 뭐죠? 바로 바나나죠.” 총각 직원들이 쏟아내는 이 같은 친근한 유머 세례에 한 번 왔던 주부 고객들은 단골이 되기 십상이다. 한 40대 주부는 “처음엔 우연히 들렀는데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활기찬 분위기가 너무 좋아 자주 오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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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CEO 특강 - 신뢰가 미래의 자산이다Ⅰ - IPTV업계 최고의 창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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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창업을 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를 아주 재미있게 보여준 강연
뭐 감동이나 배울점은 특히 없다는것이 아쉬웠다는... 뭐 2부가 있다니까, 두고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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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강 신뢰가 미래의 자산이다Ⅱ - 최고의 무형자산, 신뢰
방송 : 7월 23일(수) 밤12시 10분
출연 : 김영민 (셀런/삼보컴퓨터 대표이사)



대한민국 IT업계의 젊은 리더!

??IPTV용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셀런의 김영민 대표이사는 대학시절부터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대학원 재학시절 PC를 조립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을 도맡아 하며 미래의 IT산업의 젊은 리더가 될 준비를 한 것이다.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대량산업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로 IPTV 셋톱박스 시장에 뛰어든 김영민 대표이사는 먼저 일본에 진출,? 일본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해 기반을 다진다. 2005년 국내시장에도 IPTV 셋톱박스를 보급을 시작, 국내 시장 점유율 역시 1위를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IPTV업계의 젊은 리더가 되었다. 현재 삼보컴퓨터를 인수한 김영민 대표이사는 디지털 컨버전스시대에 맞는 제품의 개발과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별화된 제품을 출시해 PC업계의 선두주자가 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제22강 신뢰가 미래의 자산이다Ⅰ<7월 23일(수) 밤12시 10분>

?김영민 대표이사는 ‘내가 돈을 버는 것 보다 남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면, 이익을 얻은 투자자들은 기업에 신뢰를 갖게 되고, 그것이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겐 사업을 함에 있어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김영민 대표이사의 강연을 통해 신생 벤처기업에서 IPTV업계의 선두주자가 되기까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 경영기를 들어본다.

제23강 신뢰가 미래의 자산이다Ⅱ <7월 30일(수) 밤12시 10분>

? 미래의 자산을 쌓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민 대표이사는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뢰야말로 ‘무형자산의 결집체’라고 한다. 김영민 대표이사는 신뢰를 쌓기 위한 방법으로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변 사람과의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데서 신용이 생기며 본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본인에 대한 신용 평가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김영민 대표이사의 이번 강연을 통해? 미래를 위한 자산인 무형자산과 신뢰를 쌓기 위한 노하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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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생활의 달인 - 부메랑, 튜브, 죽염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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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달인들도 대단하지만 이번주에는 부메랑 달인의 대결을 보면서 입이 딱벌어진다...
물론 그동안 대부분의 달인들은 생계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이번 부메랑의 달인은 취미로 하시는 분들인것 같은데, 암튼 그들의 묘기에 입이 딱벌어진다는....


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돈도 안되는 일에 달인이 되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래의 시구절이 떠오르면서 내 자신은 지금 그 무엇에 열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되묻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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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울의 달인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얼굴을 확인해주는 화장품 거울! 거울 뒤에 숨어 있던 달인이 나타났다! 매일 거울만 보는 여자, 경력 10년의 이경숙(53) 달인! 200개의 거울을 눕혔다~ 하면 불량 쏙쏙! 하루 2만개의 거울 검수도 문제 없다! 불량 판정난 거울도 그녀의 손만 닿으면 제품으로 재탄생~ 수많은 거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달인의 열정 속으로~

2. 돈가스의 달인
최초공개! 칼의 끝 자리는 절대 고정~ 칼 뒷부분만으로 돈가스를 써는 경력 12년의 박종변(32)달인. 지금까지의 칼질의 달인들과 확실히 다르다! 휴게소 인기메뉴인 돈가스를 작두칼질로 순식간에 썰어버린다! 작두칼질 검법으로 돈가스 계를 평정한 달인의 기술, 지금 확인해보세요~

3. 도전! 최강달인 - 부메랑
한여름 무더위도 싹 물러낸 스릴 만점의 레저스포츠~ 순간의 실수도 묵과할 수 없다! 부메랑 계의 살아있는 마법사! 경력 7년의 김현곤(42)달인. 그에게 도전한, 부메랑으로 촛불 끄기는 기본, 대형 부메랑도 제대로 날리는 부메랑 계의 고수! 경력 6년의 이태균 도전자! 온몸 동원에, 터널 통과, 게다가 명중 기술까지~ 상상초월! 긴장감 넘치는 아슬아슬한 대결로 부메랑의 최강자를 가린다! 과연 최강 달인은 누구?

4. 튜브의 달인
본격적인 피서철을 앞두고 정동진 해수욕장에 헤라클레스가 나타났다! 튜브 끌기의 1인자, 경력 10년의 이종길(39)달인! 빵빵하게 바람 넣은 튜브에 끈 하나만 연결해주면 대형 튜브 50개도 문제없다! 씨름 선수도 울고 갈 힘을 지닌 바다 사나이! 지금 공개합니다!

5. 죽염의 달인
아홉 번을 굽는 죽염 속의 숨은 초절정 기술! 10m 길이의 대나무를 한마디씩 자르는 시간 12초면 끝~ 경력 3년의 강승현(27)달인! 대나무 올렸다~ 하면 다다다다~ 눈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대나무를 자른다! 작두로 채소 썰기에 톱날로 소면 자르기 미션까지~ 화끈하게 대나무를 자르는 달인의 기술,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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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CEO 특강 - 직원이 최고의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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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의 코리아 지사장의 나와서 한 특강...
강의 제목에 비해서 내용은 좀 산만하고, 업체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한듯한 느낌이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문ppt도 좀 그랬고... 일반인들이 듣기보다는 대기업 마케팅분야거나 인사과 위주인듯한 느낌...
뭐 중간에 취업, 면접에 대한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왠지 시간에 쫓기는듯한 느낌으로 좀 아쉬웠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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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강 직원이 최고의 브랜드다!
방송 : 7월 16일(수) 밤12시 10분
출연 : 채은미(FedEx KOREA 지사장)

국내 최초, 최연소 외국계 특송기업 여성 CEO.
 6백7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최대 물류업체의 한국지사장인 채은미CEO. 1998년 국내항공사 최연소(28세) 부장 승진을 시작으로 2004년 한국인 최초 FedEx 북태평양 인사부 총괄 상무로 승진, 그리고 외국계 특송업계 최초의 한국인 여성 지사장이 되었다. 그가 여성 최초로 신임 지사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는 FedEx의 '피플 퍼스트(People First)'정책을 통한 참된 직원 중심의 경영을 펼쳤기 때문이다. 채은미 CEO는 고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서비스업인 운송사업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세심한 여성의 장점과 여성 특유의 ‘배려하는 리더십’으로 기업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직원을 통한 브랜드 관리, 직원 중심의 경영비법을 공개한다!
 채은미 CEO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바로 임직원이라고 말한다. 
 직원이 바로 기업 홍보 대사이며, 브랜드 그 자체라는 것이다. 기업이 임직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일하기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 때, 직원은 충성심을 가지고 기업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창출하여 고객을 만족시킨다. 직원의 행복이 기업의 이윤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창립 35년 동안 FedEx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낸 원동력인 사람 중심의 운영철학. 

 채은미 CEO의 이번 강연을 통해 높은 직원 충성도와 3-4%의 낮은 이직율을 자랑하는 FedEx만의 직원 중심의 경영비법에 대해 들어본다.



FedEx Corporation의 창립자이자 현재 회장이며 CEO인 Fredrick Smith 회장을 가장 존경합니다.  예일대학교에서 C학점을 받은 버려진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국제물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며 전세계 220개 이상의 국제무역을 활성화시킨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경영이 회사를 짧은 기간 동안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서 가장 존경합니다.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인생이란 분명한 목표가 보이는 산보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한 사막을 더 닮았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고, 책에 소개된 사막을 슬기롭게 건너는 방법들이 인생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작가의 생각에도 수긍하기 때문입니다.




People-Service-Profit, 이것은 FedEx의 경영철학이자 제 경영철학입니다.  임직원에게 최고의 근무환경을 만들어주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줄 때 그 임직원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것이 곳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이윤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임직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직원 중심의 경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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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 - 디스코 팡팡의 달인, 의류 분류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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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팡팡의 달인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의 묘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방송도 역시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하루하루 자신을 발전시켜가는 멋진 달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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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밥의 달인
스피드면 스피드! 정확성이면 정확성! 이 모두를 갖췄다. 스피드 칼질의 최고난이도!! 묵썰기의 달인 경력 8년의 박성수씨(35세). 낚싯줄을 이용해 정확하게 반을 갈라주고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내는 달인의 칼질을 더하면 정확하게 가로 세로 0.8cm의 묵체 완성~ 물컹하고 묵이 칼에 들러붙을 시간을 주지 않는 칼질의 최고수!! 더운 여름 입맛 살려주는 새콤 시원한 별미, 묵밥과 함께 만나보세요~

2. 도전! 최강달인 - 네일아트
여름 패션의 완성! 대한민국 미녀들의 예쁜 손 만들기 필수 아이템! 네일아트~! 칙칙 뿌리는 에어브러시 하나면 영역불문! 경력 14년의 김정규(37세)달인!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3명의 도전자가 있으니~ 네일아트계의 귀여운 악동 경력 5년의 정동호(34세) 도전자. 네일아트의 환골탈태!! 경력 6년의 김종숙(30세) 도전자. 오로지 네일아트 밖에 모르는 경력 6년의 김희경(36세) 도전자 중 과연, 네일아트의 최강자는 누구??

3. 디스코 팡팡의 달인
인천 월미도의 명물!! 아찔하고 짜릿한 디스코 팡팡!! 이 디스코 팡팡을 안방 삼아 지내는 사람이 있다던데... 인간 오뚝이 이규진(32세 / 경력 15년) 달인!! 돌아가는 디스코 팡팡에서 균형 잡기는 물론 보기만 해도 아찔한 360도 고난이도 텀블링에.. 사람들 웃음 빵빵 터뜨리는 화려한 입담까지! 이보다 더 즐거울 순 없다!! 보고만 있어도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줄 것 같은 그 남자! 디스코 팡팡의 달인 지금 만나보세요~

4. 의류분류의 달인
경기도 평택의 한 물류창고에 옷들이 날아다닌다?! 다람쥐보다 날쌔게 던지면 족족 상자에 골인~ 의류분류의 달인 경력 8년 허중무(29세) 달인. 전국 매장에서 요청한 옷들을 수량에 맞게 분류하는 그의 일사 분란한 손길이면 텅 빈 박스들이 금새 가득~ 옷의 구김이 가지 않게 살포시 잡아서 건너편에 있는 상자에까지 거뜬하게 던져 넣는데..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한 의류 분류법!! 지금 확인하세요~

5. 골프공의 달인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상자 접기의 달인들! 그러나 이번엔 상자 뜯기의 달인이다! 손만 대면 탁!탁!탁! 재빠르게 골프공 상자를 뜯는 조하영(31세) 달인. 골프용 나무 티를 이용해서 상자 끝부분에 손만 댔다 하면 어김없이 열리는 상자들... 근데 이 상자들에 다시 골프공을 담는다?? 로고가 인쇄된 골프공을 번호 순서대로 세 개씩 잡아서 넣는 작업까지!! 어떤 작업이든 거침없는 그녀의 손놀림을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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