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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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   목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저   자 : 공지영
출판사 : 김영사
출판일 : 2001년 7월
구매처 : 오디오북, Yes24
구매일 : 2004/10/3
일   독 : 2004/10/2
재   독 :
정   리 :


<정호의 생각>
이런 종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몇일전에 등산을 하면서 mp3 플래이어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넣어가지고 등산을 했는데, 너무 좋았다.
수도원 기행이라는 부분은 잘 와닫지는 않지만, 저자가 여행을 다니면서 내는 질문들, 삶의 의문점들, 삶의 딜레다들이 내 가슴을 적셨다고 할까...
내가 몇년간 찾아다니고 있는 그 알수없는 뭔가의 의문점들에 대해서 정답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찾아헤미이는것들이 어떤것들이였는지 이제 어렴풋이나마 윤곽이 잡히는것 같고, 저자가 그것들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보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할까...
암튼 당분간 옆에 끼고, 두고두고 볼책인것 같다...

가을이라... 가을을 타나...-_-;;


<미디어 리뷰>
유럽 수도원 순례 ‘공지영 참회록’ [ 조선일보 | 김광일(책마을) | 2003-02-22 ]
소설가 ‘공지영 마리아’(38)의 기행문이 나왔다. 제목은 [수도원 기행]인데, 내용은 인생 성찰이자 신앙 고백서다. 그녀는 유럽에 산재한 여러 수도원으로 이동하면서 갖가지 사념과 현장을 묶어 본다. 동시에 그녀는 종교적 동선을 따라 자신의 성장기를 되돌아 본다. 그리고 그녀가 경험한 한국 현대사의 회한을 섞는다. 참회록이면서 간절한 기도문이기도 하다. 입을 비죽거린다면, 아직도 우리는 유럽 경험의 글이 독자에게 유혹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시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알게 해준다.

여고생 공지영의 첫사랑, 열혈 신학생, 유신 압제 시대, 그리고 신학교와 성당을 떠났던 그 70년대(32쪽)가 서기 2000년대의 유럽 풍광에 겹친다. 유럽은 적당한 연모와 역겨움의 대상으로 혼재한다. 제한속도 130㎞의 프랑스 고속도로를 시속 200㎞로 달리는 한국인 신부님과 프랑스 신부님이 등장하는 유머도 있다(100쪽).

공지영의 첫 기착지는 프랑스 아르장탱에 있는 베네딕트 여자 수도원이다. 그녀는 ‘밀실’과 ‘최루탄 거리’ 사이에서 옮아 다닐 수 있게 된 신념의 부유를 맞닥뜨린다. 종교의 정치 참여, 혹은 스스로 갇힘, 어느 것이 옳은 것이며, 어느 것이 가당한가. 이 프랑스 최고의 수도원은 그레고리안 성가로 또 다른 공지영을 발견케 한다.

전투적 투사 공지영, 독재와 항거, 몸과 영혼이 함께 불탔던 시절이 이어진다. 회상에 감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창살에 스스로 갇힌 봉쇄 수도원 수녀들처럼, 공지영은 “테러블리 해피”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61쪽).

두번째 기착지는 솔렘 수도원이다. 남자 수사들이 사는 베네딕트 봉쇄 수도원이다. 그리고 리옹에 있는 갈멜 수도원에 간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수도원, 그래서 “전환점에 서 있는 교회”를 발견한다(96쪽).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공지영이 봤으니 가슴 뭉클한 글이 되고 책이 된 것이다.

다시 ‘마리아의 무염시태 수도원’인 테제공동체를 간다. 공지영은 생각한다. ‘세상은 수도원이 아니다. 나는 젊어지고 싶지 않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다.’ 그리고 문득 터득한다. 돌아온 탕자처럼, 가진 게 떨어져야 집을 생각하고, 가톨릭을 떠났던 18년을, “그 알량함을 탕진하고야 나는 스스로 내 코에 고삐를 맬 수 있었다”, 고.

그녀의 발걸음은 스위스의 프레부르에 있는 ‘길 위의 성모 피정의 집’, 오트리브 수도원, 마르그로지 수도원 그리고 다시 독일로 건너가 여러 수도원으로 옮아간다.

공지영 개인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삶”을 아는 계기였다면, 그리고 “세상은 혹여 살만한 곳일 수 있겠다는 희망”(후기)이었다면, 독자에게는 유럽과 그쪽 사람들을 전혀 다른 각도로 알게 되는 여러 형태의 체험 중의 하나를 얻게 되는 책이 됐다.

2001.7.28



<정호의 정리>
여행은 '떠난다'는 것보다 '돌아옴'에 더 의미가 실린다. 삶은 늘 떠난 자리보다 다시 찾아든 현재에 무게중심을 옮겨놓기 때문이다.

신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18년 만입니다"하는 순간 그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닌가봐요.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될 수가 있어요?"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며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또 덧씌우면서 나조차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버린 것

"나도 한때 세상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한때 나도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내 삶을 증오하고 한 마리의 벌레처럼 스스로를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과거로 올라가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나의 어리석음이 펼쳤던 내 인생의 드라마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다시 바라보는 형벌을 받았다. 이제 순종이라는 말을 아름다운 의미를 알 만한 나이가 된 나는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아멘."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생은 길고 나누어야 할 것은 아주 많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니까. 밀알이 쪼개져 백배, 천 배의 밀알이 되듯이, 쪼개면 쪼갤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이 지상의 유일한 것, 그게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으니까."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으로 우주에 감응하다……. 그것이 진리임을 안 순간, 진리는 그대의 그림자이고 메아리임을 알게 된다……. 그 무렵, 나는 산사를 떠돌았다. 산사 입구에서 성우가 읊조리는 불경 테이프를 사서 운전할 때마다 그것을 들었다. 혹시나 여기에 길이 있지 않을까. 무언가, 나를 인도해 줄 그것이, 꼭 집어서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내 영혼을 환히 비춰줄 그 무엇이……. 그건 20대의 나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20대의 나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20대에 알던 모든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처음부터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알기는 안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은 참을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고 이대로 모르는 채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무엇이든, 그게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다. 그렇게 가없이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내밀고, 하지만 알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알 것 같았던 그것은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다시 일어서서 길을 떠났다. 그 악착스러움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자신에게 신물이 날 만큼 집요한 것이었다. 대체 인생에서 뭘 바라는 거니?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마음 한켠에서 웅웅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엎어져 있을 순 없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 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졌습니다! 항복합니다! 항복……. 합니다, 주님.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 자격에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할 서튼처럼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리고 돌아가 나는 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써 놓고 보니 우리말이 이상하기도 하다. 항복과 행복, 획 하나 차이의 낱말…….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그래 그 사람도 이런 이런 사정이 있었어, 그러니 나한테 잘못했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값싼 용서이고, “나는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게 진짜 용서라고……. H. 나누엔의 말처럼 우리는 “상처를 딛고 일어설 자유”를 얻어야 한다. 나 역시 많이 편안해진 후에, 돈이나 명예, 사랑이나 이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날마다 되뇌며 살던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상처에 대하여, 그것이 차마 집착인 줄도 모르고, 그 어는 것보다 더 무섭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길가에 펼쳐진 아름다운 독일 마을들 사이로 비가 그치고 안개가 퍼지고 있었다. 사랑해야지, 그건 나도 안다. 한 선배도 그건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게 사랑인지.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고 때로는 참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칼끝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만큼 냉정하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한없는 물렁탱이로 남아 오냐, 오냐 해야 한다.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일부러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일 때도 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혹은 친구에게도……. 나는 그것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그 많은 일을 겪고도…….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건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 아니며, 그건 그저 가만히 있으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정상에 오른 박찬호도 날마다 야구연습을 하고, 세계일류 명피아니스트들도 날마다 연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저절로 터득할 리가 없다는 것을. 사랑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만 사랑에는 교과서도 선생도 없어서 제 부모의 전력을 모방하거나 배척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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