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사반장 17탄 ‘도둑 사냥꾼’ 양기석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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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3년 121건의 절도사건을 해결하고 총 85명의 절도범을 검거해 ‘포도왕'에 오른 양기석 경감(당시 남대문경찰서 330수사대 소속)이 1계급 진급해 계급장을 수여받고 있다.(위)
지난해 11월 '경우의 날'을 맞아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양기석 서울 용산경찰서 경우회장이 맹형규 정무특보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있다

집에 못보던 2009년도의 주간지인 일요신문이 있어서 뭔가 하고 봤는데, 영동 작은 이모부가 인터뷰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는... 그저 경찰서장을 하셨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런 자세한 내용은 처음으로 알았다는...

뭐 암튼 현역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부단히 활동을 하시는듯...

왕년의 포도王, 봉사王으로 다시 태어나다

주어진 시간은 40일. 그안에 도둑놈을 많이 잡으면 최고가 된다는 말에 양기석 형사(당시 서울 남대문 경찰서 330수사대 소속)의 눈이 번쩍 뜨였다. 법학도 출신 회사원에서 늦깎이 형사로 변신한 그는 어렵게 선택한 두 번째 인생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지존이 아니면 의미도 없다.’ 각오를 다진 양 형사는 당장 그날부터 매일 새벽 3시면 관할 내 주택가를 돌며 새벽 순찰을 돌았다. 동이 틀 때쯤이면 서울 황학동 중앙시장과 남대문 등 시장통을 돌며 장물아비들을 들쑤셨고 느지막이 사무실로 돌아와 수집한 첩보를 일지로 정리했다. 경찰서 안에 딸린 작은 쪽방에서 두, 세 시간 새우잠을 자고 나면 또 다시 새벽. 양 형사의 새로운 하루일과는 똑 같이 반복됐다.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모셔온’ 부인과 제법 말문이 트여 아빠를 찾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굴비처럼 줄줄이 딸려오는 도둑놈들과 씨름하다보면 그리움도 만성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40일 뒤, 그는 총 121건의 절도 사건을 해결하고 모두 85명의 도둑을 붙잡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평균 3건의 사건을 해결하고 2명 이상의 범죄꾼에게 쇠고랑을 채운 셈이었다. 1973년, 경찰은 양 형사에게 ‘포도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총 34년 경찰 인생 가운데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고, 주름진 그의 눈에 다시 왕년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지난 1998년 은퇴한 양기석 경감은 3년 째 서울 용산경찰서 경우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80년 경위로 승진해 첫 반장직함을 달았던 감동을 못 잊어 용산에 터를 잡았다는 양 경감은 ‘신문에 실릴 만큼 대단한 일을 하진 못했다’며 쑥스러운 듯 기자를 맞았다.

그러나 내세울 게 없다던 양 경감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1972년 창설된 330수사대에서 가장 많은 검거실적을 올려 이듬해인 73년 ‘포도왕’에 등극한 그는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 사회면을 장식한 유명인사였다.

62년 서울 동묘파출소 말단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양 경감은 서울 남대문 경찰서와 강남 경찰서, 용산 경찰서 강력반장과 서울시경 형사과를 거쳐 강원 영월경찰서 수사과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98년 경찰청 수사보안 연수소를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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