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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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차을 가지고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의 내용의 영화...
독특한 방식이고, 꽤 괜찮기도 한데, 약간 복잡한듯한 느낌이라는...

개봉 2007년 08월 01일 
감독 정범식 , 정식 
상영시간 98분
장르  공포 
제작국가  한국
제작년도  2007년
홈페이지  http://www.gidam.kr

바야흐로 신新문명과 전쟁의 혼돈이 극에 치닫던 1942년 경성,
모든 공포는 그 해 겨울 시작되었다…

동경 유학 중이던 엘리트 의사 부부 인영(김보경)과 동원(김태우)은 갑작스레 귀국하여 경성 최고의 서양식 병원인 ‘안생병원(安生病院)’에 부임한다. 이들은 병원 원장 딸과의 정략 결혼을 앞둔 여린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 유년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저는 천재 의사 수인(이동규)과 함께 경성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경성을 흉흉한 소문으로 물들인 연쇄 살인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어느 날 자살한 여고생 시체, 일가족이 몰살한 교통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10살 소녀가 실려오고 병원엔 음산한 불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마다 비밀스런 사랑을 품고 한 곳에 모이게 된 이들은 다가오는 파국을 감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지독한 사랑과 그리움이 빚어낸 섬뜩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경성을 뒤흔든 비극의 소용돌이가 점점 더 그들 앞에 옥죄어 오는데…


기록 一 ] 시대를 안은 공포
1942년, 공포로 물들다.

밖으로는 전쟁과 제국주의의 포화가 안으로는 모던과 신문물의 유입이 끊이질 않았던 1942년 경성. 거리마다 자유 연애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서구 문물의 혜택을 누리려는 부르주아들의 향락은 절정에 이른 반면, 청계천 주변으로 빈민들이 모여들고 무능한 지식인 룸펜들의 담배 연기가 짙어져 갔다. 이처럼 1940년대는 끔찍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인 문명들이 한데 부딪치며 내는 혼란스러움과 ‘현대화’에 대한 무모한 경외가 공존하던 시대이다.

얼마 전까지 1930,40년대는 일제 강점과 독립투쟁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등장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닫혀 있는 역사관에서 조금만 틀어 보면 그 시대에도 애정의 도피 행각이나 낭만에 취한 젊은이들, 끔찍한 살인 등 현재와 다를 것 없는 사건들이 분명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열린 시선이 가져다 준 다양한 시대적 변주는 이 시대를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풍성한 감성이 가득한 공간으로 주목 받게 하였고 늘 새로운 소재를 찾는 충무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적 공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여러 편 제작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기담>이 첫 크랭크 인을 알리게 되었다. <기담>은 누구도 실제 보지 못했던 매혹의 ‘경성’을 배경 위에 ‘공포’라는 장르를 하나 더 얹혀 낸다.
낮엔 최신식 건물 사이로 아름다운 벚꽃이 휘날리는 활기찬 거리로 보이지만 밤엔 전차줄과 전기등이 얼기설기 들어서 있는 모습이 정체 모를 이질감을 안겨주는 경성의 이중적인 모습은 그 공간 자체만으로도 기묘함을 자아낸다.
혼란과 매혹이 공존하던 경성을 극단의 공포가 발생하는 영화적 공간으로 선택한 <기담>. 미지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공포 <기담>은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증폭되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담고 그간 한국 영화에서 보여진 적 없는 새로운 질감의 공포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중략]
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새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장이 선 듯도 싶지 않건만, 사람은 또 웬 사람이 그리 거리에 넘치게 들끓느냐.
이층, 삼층, 사층… 웬 집들이 이리 높고,
또 그 위에는 무슨 간판이 그리 유난스리도 많이 걸려 있느냐,
- 천변풍경 ‘박태원’


기록 二 ] 사랑을 품은 공포
가장 섬뜩한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


실제 겪지 못한 시대에서 벌어지는 공포라는 점에서 더욱 호기심을 자아내는 <기담>은 ‘사랑이 야기한 끔찍한 공포’라는 점에서 그 색다름에 방점을 찍는다.
그간 ‘슬픈 공포’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지만 사랑이 불러온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결국 원혼과 저주로 귀결되는 뻔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기담>은 공포의 모티브이자 귀결점을 ‘사랑’으로 놓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공포의 틀을 제시한다. 치정 어린 애정 복수극이 아니라 사랑과 죽음이 뒤엉킨 순간에 발생하는 비극에 초점을 맞춘 <기담>은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에 가장 두려운 공포를 만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혼란스런 시대상을 반영하듯, 1942년 경성에서 펼쳐지는 <기담>의 사랑 역시 불안정하고 어긋나 있다. 원장 딸과의 정략 결혼으로 편안한 생활을 보장 받았지만 점점 숨이 막혀오는 의대 실습생,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엘리트 의사 부부에게 숨겨진 충격적 비밀, 사랑하는 엄마에 멋진 새 아빠까지 갖게 된 10살 소녀의 끔찍한 악몽이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과 섬뜩함을 선사한다.
비명이나 핏빛 공포가 주는 말초적 자극 대신 <기담>은 ‘아름다움 속 도사린 공포’로 감정의 극적 대비를 불러 일으키며 색다른 공포 감각을 증폭시킨다.
기묘한 도시의 명암처럼 사랑마저 공포로 변한 1942년의 경성공포극 <기담>을 마주한다면, ‘사랑해’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 올 것이다.




조선인 하녀 마리아, 변사체로 발견
[중략]
그날 밤 이노우에는 다카하시 부인을 찾아가 부인의 침실에서 담소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두 남녀는 마침내 ‘사람의 눈을 피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같은 해 7월 24일 저녁, 두 남녀는 부인의 침실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마리아에게 발견되었다.
… 다카하시 부인은 영원한 함구책으로 마리아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이것을 이노우에와 상의했다.
- 경성 기담 ‘전봉관’


기록 三 ] 마력을 지닌 공포
아름다울수록 끔찍하다.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경성’의 시대적 풍미를 스크린에 담아 낸 <기담>은 보는 이를 현혹할 만큼 마력 넘치는 볼 거리를 완성해 낸다.
경성공포극의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곳 ‘안생병원’이 지어진 양수리 세트장을 중심으로 그 외 공간들이 들어선 별도 스튜디오를 합쳐 총 1300여평 이상의 세트 규모를 자랑한다. 1여 년 동안 ‘스케치, 미니어쳐, 3D 시뮬레이션’작업을 거쳐 탄생된 <기담>의 병원은 공간과 공간이 조각난 기존 세트 구성과는 달리 복도와 계단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실제 동선을 100% 구현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흡사 옛 병원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안생병원 세트는 초기 서양식 건축 양식을 기조로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 목조 침대, 문 손잡이, 현판 등 일본식 소품과 디자인이 혼재되어 묘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목조 가구와 은은한 조명, 즐비한 무명천들, 처음 보는 근대 의료기기들로 만들어진 ‘안생병원’의 모습은 차갑고 건조한 현대의 병원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병원을 탄생시킨다.
또한 수 많은 헌팅을 거쳐 선정된 부천, 목포, 부산, 청태산 등의 오픈 세트 촬영 시에도 수십 포대의 흙을 공수하여 아스팔트를 덮는 것은 물론 길거리를 지나는 전차와 자동차, 새로 제작해 설치한 간판과 쇼윈도 장식, 산 길에 쌓인 눈까지 디테일한 작업을 놓치지 않았다.

‘기담’의 비극이 펼쳐지는 병원 공간은 물론 경성의 풍미를 그대로 살린 의상과 헤어 역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엘리트 의사로 나오는 ‘인영’과 ‘동원’은 맥고모자와 하이힐, 퍼머 머리, 바지 저고리가 아닌 양장으로 대변되는 신사와 신여성을 완벽히 보여준다. ‘인영’은 공포 영화 속 여주인공에게 연상되는 긴 머리가 아닌 단발 웨이브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 시대 신여성을 대표하는 스타일이었으며 100만원을 호가하는 ‘동원’의 안경 역시 그 당시 지식인들을 대표하는 아이템이다. 여기에 국내에 세 대가 있다는 포드 디럭스 세단과 단 1대씩 밖에 없는 시보레 마스터, 캐딜락 플리트우드 등 당시 최고 부유층이 탔던 자동차들을 공수하였다.
또한 영화 속 의사와 간호사들이 입는 흰 병원복을 위해 우선 10개 이상의 다양한 재질과 색감의 화이트 천을 입수해 수작업으로 구김 작업과 염색을 모두 달리하고 실제 카메라 테스트까지 마친 후에야 인물에게 입히는 꼼꼼한 과정을 거쳤다.
이렇듯 완벽한 고증 작업과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기담>의 비주얼은 시대적 공포 분위기를 돋우는 명도와 채도를 반영하도록 ENR 현상 과정을 통해 공포와 사랑이 뒤엉켰던 마력의 소용돌이를 더욱 극대화 한다.
[중략]
이들이 화사한 옷을 사고 온갖 치장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시 경성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엔 거의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치마 한 감에 삼사십 원, 양말 한 켤레에 삼사 원, 분값만 해도 아침에 바르는 분, 낮에 바르는 분, 밤에 바르는 분을 합해서 사오 원, 머리 손질하는 데에도 일이 원이었다.
-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 ‘신명직’

경성공포극의 중심, 안생병원 세트 제작기

외,내관
당시의 경성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벽돌을 쌓았는데, 서양식 건축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과도기 단계의 일본풍 구조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틀로는 시대상을 재현할 수 없었던 <기담>은 건물 외벽의 라인 작업부터 새롭게 구성, 스티로폼을 이용한 벽돌쌓기를 했다.
모양도 모양이겠거니와 실제 벽돌이 아니기에 색감을 맞추는 일 역시 만만치 않았고, 조명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또한 현재 명동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적벽돌과 흑벽돌을 결합한 방식을 차용해 완성도를 높였다.

병원 내부의 주요 재료는 나무이지만 단순한 목재 건물로 치부할 수 없는 섬세한 작업이 수반되었다.
Y자 복도, 중앙 복도, 계단, 병원 데스크 등의 공간들은 각각 그린톤, 브라운톤, 레드톤 등 다양한 색감으로 차별화를 두었으며 나무마다의 질감을 뚜렷이 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보통 나무 마감재로 ‘스테인’을 사용하지만 <기담>은 원래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색감과 질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결국 천연 안료를 사용하여 최상의 효과를 달성하였다.


인테리어
인물별로 주요 활동 공간을 가지고 있는 <기담>은 고증을 기본으로 하되 각 공간마다 영화적인 특색을 부여한다. 불길한 의식이 치뤄지는 영안실은 다다미 구조를 차용하여 강한 일본 색체를 띄고, 원장실은 서양의 엔틱 느낌을 가미해 고풍스러움을 가미하였다. 또한 정남이 당직 근무를 하게 되는 시체실은 성당을 연상시키는 창문 디자인을 겸해 왠지 모를 신성함마저 느껴지게 제작하였으며, 타일로만 구성되었을 경우 냉함은 있지만 중압감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해부실은 내부의 타일과 외부의 벽돌이 조화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생활소품
큰 틀의 외,내관뿐 아니라 사소한 디테일도 심혈을 기울인 <기담>은 문 손잡이 하나도 수 차례의 수작업을 거쳤다. 당시 문 손잡이 고증작업을 통해 목형 작업을 한 후 틀을 만들고 재질을 부어 굳힌 후 손수 대패질을 하여 손 때가 묻은 느낌을 살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으며 스탠드, 침대, 책상, 의자 등 웬만한 전문 업체의 샘플은 거의 다 살펴볼 정도로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해냈다.

의료소품
병원소품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국내에는 의료 용품에 관한 참고 자료가 전무하였기에 일본은 물론 수 많은 외국 사이트들을 뒤져가며 하나하나 아귀를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시체 보관함이 존재했을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형식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해결은 물론 병원 의료기 샘플 수집에만도 몇 개월이 걸렸다. <기담>은 기존의 소품들 중 활용해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1940년대는 기술적 미흡으로 인해 대부분의 의료기기가 직선형이 아닌 유선형 구조였고 운반카나 수술도구대 등도 스테인레스가 아닌 세라믹 법랑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모두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이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된 ‘휠체어, 운반카, 산소 호흡기, 전기 소작기’ 역시 모두 제작하였고 폐업을 앞둔 병원을 수소문 해 의료기기를 공수해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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