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비엔나 필 하모닉 신년 콘서트 (사진보기)

 

KBS 중계석에서 방송한 비엔나 필 하모닉 신년 콘서트...
http://www.kbs.co.kr/1tv/sisa/kbsrelay/about/index.html
클래식 오딧세이에서 가끔씩 소개가 된 것을 보고, 꽤 유명한 신년 음악회라는것을 들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아주 괜찮았다.
정통 클래식이면서도 격식을 깨고 무용수들이 출연하기도 하고, 연주자들이 한명씩 자리를 비우고 결국에는 지휘자만이 남는 퍼포먼스까지... 마지막 곡을 들으면서 청중들과 함께 박수를 치는 전통까지...
좋은 음악을 뛰어넘어서 청중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꽤 멋지고 부럽게 느껴진 공연...
언젠가 저자리에 앉아서 나도 신년을 맞이하는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2010/02/19 - [예술 iN/음악] - 2010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 조르주 프레트르 (사진보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서트 중의 하나인 비엔나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Vienna Philharmonic Orchestra)의 신년 음악회가 유명한 빈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황금 홀에서 개최됩니다.

2009년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이 지휘자로 나서 "러브레터(Liebesbotschaft)", "봄의 소리(Fruhlingsstimmen)"를 비롯한 슈트라우스가의 왈츠를 연주합니다.

비엔나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는 1939년 12월 31일 첫 공연되었으며, 1941년부터는 1월 1일에 실시되었으며, 1946년부터 신년 음악회로 불리워졌습니다.

이 음악회는 빈의 자랑스런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그는 빈을 세계적인 왈츠의 도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음악회는 해를 거듭할 수록 독자적인 지위를 구가하면서 세계의 가장 유명한 음악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25년이 지나면서부터 세계 각국에서 약 7억명이 TV 위성중계로 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주 공연 후에도 항상 여러차례의 앙코르와 함께 음악회가 끝이 나며, 지금까지 아바도(Claudio Abbado, 1988 & 1991),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89 & 1992), 로린 마젤(1994, 1996 & 1999 & 2005), 주빈 메타(Zubin Mehta, 1990, 1995 & 1998), 그리고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1993, 1997, 2000 & 2004)와 같은 금세기 최고의 명 지휘자들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비엔나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New Year's Day Concert)

장소: 빈 무지크페라인(Vienna Musikverein)
주소: 12, Bosendorferstrase, Vienna , Vienna 1010, Austria
e-mail: tickets@musikverein.at
지하철: U1, U2, U4 칼광장 역(Karlsplatz)
트램: 1, D, J번 케른트너 거리(Karntner Ring)

<비엔나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웹사이트 가기>

<무지크페라인 웹사이트 가기>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II, 1825-1899)

19 세기 무용 음악 작곡가로 불후의 명성을 얻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는 1825년 10월 25일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Johann Strauss, Sr, 1804-49)는 당시 유럽에서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지휘자와 작곡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음악을 공부하는 것을 말렸으나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그에게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는 레스토랑 밴드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1884년 빈 외곽에 있는 히칭의 도마이에르에서 첫 음악회를 가졌으며, 곧 아버지를 위협하는 성공적인 음악가로 성장했습니다.

19세의 나이에 15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악단을 조직해 무도회에 데뷔했으며, 자신의 작품 1∼4번의 무도곡을 연주하여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계속해서 빈 시민공원(Volksgarten)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곳에서는 오늘날에도 자신의 악단을 지휘할 때 처럼 턱 아래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실물 보다 큰 그의 동상(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동상은 에드문트 헬메어(Edmund Hellmer)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빈에서 여행자들이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명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악단과 아버지의 악단을 하나로 통합하여 그들과 함께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며 유럽 투어에 나섰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러시아 성 페테르스부르크의 페트로파울로브스키 공원에서 정기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1863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빈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가 되었고, 1872년에는 악단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뉴욕의 4회의 대규모 연주회와 보스톤에서 14회의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연주회는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했고, 악곡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기간 중에 "아침 신문"을 비롯하여 1867년에는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을 곁들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빈 숲속의 이야기", "술, 여자, 노래", "빈 기질" 등의 대규모 왈츠곡들을 계속 작곡하였습니다.

1870년 어머니와 동생 요제프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큰 타격을 받기도 했으나 쟈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에서 자극을 받아 이때부터 프랑스와 독일에서 오페레타를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1874년 "박쥐(Die Fledermaus)"가 연주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 뉴욕에서도 공연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오페라의 양식을 창조했으며, 그 후에 나온 오페레타 "집시 남작(Der Zigeunerbaron)"에서 이 쟝르를 최고조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곡은 뛰어난 결실을 이루었으나 "박쥐"에 비해서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세차례 결혼을 했고, 17곡의 오페레타와 수많은 왈츠 곡들을 작곡했으며, 그 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의 비공식적인 국가 연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1899년 6월 3일 빈에서 사망했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관련 웹사이트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