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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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칸 만화로 불교철학을 쉽게 풀어놓아 보자고 작정한 책이다. 욕심 많지만 귀엽고 얄미운 돼지들의 못말리는 행태를 통해서 불교식 깨달음을 문득 느끼게 하는 묘미가 있는 만화책이다.

그러나 만화책이라고는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권하기가 망설여질 만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자못 심오하다. 잠깐 실험(?)을 해 보았더니 아이들에 따라서는 만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어라 읽어보려 하는 측과 몇 쪽 읽어보더니 휙 던져 버리는 녀석 등 반응이 여러 가지이다. 그러니까 어린이불자를 위한 선물로 무턱대고 사려하지 말고 아예 어른용 책이거니하고 구입하는게 낫다는 말이다.

내용은. 그런대로 재미있고 볼만했다. 만화라고해서 지나치게 기대치를 낮추고 대할 사람들의 뒤통수를 딱 치고 지나갈 만큼 그 안에 담긴 진가가 제법이다.

책 내용이 좋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기억도 나던책이다...

3권다 좋지만 그중에서 1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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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돼지라고?

생노병사라든가 애별리고 등 불자들의 귀와 눈에 익은 사고팔고(四苦八苦) 등 대명제들, 불교사를 쥐락펴락했던 유명한 법거량들이 어처구니 없으리만치 재기발랄한, 경쾌한 선 처리의 만화로 표현되어 있다. 불교전반을 한눈에 알게 하는 교리서의 하나로 분류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런 매력으로 인해서 일본에서만 150만부 이상 팔렸다고. 시원스레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부처님과 삶의 진실을 찾아 우왕좌왕 하는 돼지들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속 돼지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인 듯. '현대철학과 심리학의 주요 이론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 있어서 자아를 발견하고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는데도 특효가 있다’는 출판사 측의 주장이다. 1권의 제목은(주제를 암시한다) '우리는 모두 돼지’, 2권은 '있는 그대로 좋아’, 3권은 '아무 일도 아니야’.

지은이 고이즈미 요시히로 씨는 불교미술을 연구하다 동양철학에 흥미를 느껴 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광고와 출판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이 책은 종교 서적이 아니며 '나 자신’이나 '마음’, '사물을 보는 법’에 대해서 쓴 책이다"고 했다. 어쨋든 돼지코를 한 부처님을 만나게 하다니 얼마나 엉뚱한 발상인가.  








나는 어렸을 적 제법 곱게 자랐다. 내가 중학생 이후부터는 계속 사업에 실패하시던 아버지가 조금씩 일에 진척이 있었고,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동네에서 제법 사는 집으로 통했다. 가족 모두 건강했고 아버지의 사업도 잘 되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가의 꿈을 키우며 학교수업이 없는 공휴일이나 방학 때면 방안에 틀어박혀 만화를 보고 그렸다. 내 삶의 사전에 '걱정'이라는 단어는 없었던 듯싶다. 그러나 군을 제대하고 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예상치 않았던 그 '걱정거리'가 내 마음속에서 그리고 내 뇌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피어 자라듯 조금씩 자라났다. 그 '걱정'의 출발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상을 조금씩 알기 시작한 20대 중반부터는 고민과 걱정거리를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곰팡이처럼 자꾸만 생겨나는 걱정거리와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성인이라면 어느정도의 스트레스와 고민거리를 끼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걱정거리'라 함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두려움과 속태우는 일들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증세일 수도 있다.




◁「행복으로의 여행」(『부처와 돼지 3』 중에서)

만화를 통해서 그러한 고민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만화를 보는 동안 그 고민의 순간을 잠깐 탈출하고 싶을 뿐, 영화나 독서 등 대부분의 문화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듯 만화를 다 보고 나면 다시 일상의 고민 속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고이즈미 요시히로(小泉吉宏)란 만화가는 그러한 부분을 좀 달리 생각한 것 같다. 단순히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만화를 보기보다는, 사람은 왜 고통과 걱정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가 사람들이 만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마음'이 내 몸과 생각을 맘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고민한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이 생기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좋게만 보인다. 그것은 단지 마음에 이끌려 생각할 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때문에 울고 마음 때문에 웃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과 생각을 휘두르는 그 '마음'이라는 녀석을 움직이는 것은 무얼까? 그것은 우리의 눈과 귀와 입과 코와 피부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자신의 주관대로 생각하고 결정짓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전부를 보려 하지 않고 일부만 본 후 전부를 자신의 주관대로 추측한다.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에게는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또한 '없는데 (멋대로) 보는 것'도 있다. 우리는 전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달은 똑같은데 물에 비친 달은 형태가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아등바등거리면 마음이 흐려져 물에 비친 달 같은 자신밖에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만화책을 읽으면 깨달을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작지만 부푼 기대감으로 마지막까지 읽어갔지만 마지막에 씌어진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 나는 약간의 실망과 함께, 하지만 금세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아,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하고 아주 작고 작은 깨달음의 이치에 한발 다가섰다.

"불안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불안한 채로 안심하게나."

이 만화를 통해서 부처가 깨닫듯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를 보는 내내 삶이란 정말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무엇보다 지금, 바로 지금.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마감이 코앞에 닥쳐 급급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창비 웹매거진/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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