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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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상당히 지루하고 이게 뭐야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판에 감동의 물결이 밀어 닥치며, 많은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무능한 아버지, 답답하지만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 억척맡은 동네 아줌마, 떠나는 아름다운 지옥 우리집, 두남자와 두여자 그리고 흘러가는 여자들, 훔쳐본 일기와 문자 그리고 분노와 좌절, 날 사랑했어?, 누나가 사랑했던 남자를 사랑하는 나, 젋은 나이에 간암으로 죽은 내 사촌동생 현호...

그리고 마지막에 정겹던 집을 떠나보네며 읆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마지막 구절

살도록,
과오를 범하도록,
타락하도록,
승리하도록,
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래 이 집이여 안녕...
나의 아름다운 지옥이여 안녕...
안녕...


막판에 쌓였던 그 많은 잘못, 고민, 번뇌들이 이 말로써 눈녹듯이 씻겨져 내려간다...

그러면서 나도 그동안 쌓아두었던, 고민해왔던 모든것들이 눈녹듯이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였다.
암튼 하고 싶은 말들.. 사연들이 많다... 집, 사람, 사랑.. 등등... 그냥 쪽팔려서.. 챙피해서.. 부끄러워서 우선 덮어두기로 하고...
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기 위하여... 여기서 글을 마친다...


<도서 정보>제   목 : 아름다운 지옥 1, 2
저   자 : 권지예
출판사 : 문학사상사
출판일 : 2004년 3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5/1/5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살도록, 과오를 범하도록, 타락하도록, 승리하도록, 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도록 하기 위하여!


<미디어 리뷰>
저자: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향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학령기에 서울에 정착.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문단에 데뷔, 귀국 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뱀장어 스튜>로 2002년 2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

작가 자신의 성장기를 녹여낸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작가 권지예가 드디어 자신의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을 출간했다. 희망과 절망, 낭만과 촌스러움이 공존하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자 아이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자라나는 성장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아름다운 지옥》은 작가 권지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자전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권지예가 《아름다운 지옥》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아는 이 하나 없는 만리타국에서 권지예는 가슴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을 말이 아닌 글로 토해 냈다. 그때 처음 써내려가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소녀 시절의 기억을 담아낸 《아름다운 지옥》. 하지만 쓰면 쓸수록 아픈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결국 채 몇 장 쓰지 못한 채 원고를 한쪽으로 밀쳐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1997년 문단에 데뷔한 권지예는 쓰다 만 이야기를 마음의 빚처럼 품에 안고 살았다.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두 권의 소설집을 펴내고 2002년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한 후에야 권지예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이런 결심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 혜진의 입을 빌어 드러나기도 한다.
“언젠가, 지금은 아닌 언젠가 내가 생의 절반쯤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 이 집에 대해서 그리고 이 집에서 보낸 지옥 같은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내 인생은 어느 길을 향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이 소설의 재미는 물론 탄탄한 스토리와 작가의 문장력에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이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1970년대의 풍경이다.
젊은이들을 옥죄던 유신체제의 모습은 이 소설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비록 주인공은 본격적인 정치 운동에서 한 걸음 빗겨난 곳에 서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이 소설 속에서의 현실 묘사는 더욱 힘을 얻는다.
하지만 1970년대가 그렇게 어둡고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논산댁 큰아들인 수범이가 엉터리로 부르는 팝송들은 영어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우리 어렸을 적의 모습 그대로이다.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오도바이~” 하고 억지로 가사를 지어내 부르면서도, 좋아하는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밤마다 통기타를 튕기는 수범이의 모습은 그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청춘은 아름다운 지옥

《아름다운 지옥》의 서장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자신의 집을 마련한 아버지는 집 안쪽에 자리한 작은 화단에 라일락 나무를 심는다. 혜진의 가족이 울고 웃으며 보낸 9년 동안 라일락 나무는 한 가족처럼 그 자리를 단단히 지킨다.
비록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혜진의 가족이 집을 떠나며 라일락 나무 또한 파헤쳐져 뿌리를 드러내지만, ‘아무 데서나 뿌리도 잘 내리고 천덕꾸러기 같이 잘 큰다구마’ 하며 라일락을 심으시던 아버지의 말처럼, 상처입고 파헤쳐진 혜진의 가족 또한 다른 그 어딘가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잘 커나갈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마지막 부분을 빌어 “살도록, 과오를 범하도록, 타락하도록, 승리하도록, 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도록 하기 위하여!”이라는 외침으로 소설을 맺으며, 권지예는 독자들에게 퍽퍽하고 갈증 나는 젊음을 살아낼 수 있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남루한 삶, 그래도 살아야 하는…

좀 아는 척 하면서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오도바이~'라고 노래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산타는 썰매 타고다니는데 무슨 놈의 오토바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권지예의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은 순정하고 촌스러웠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1971~1980년 열두 살에서 스무한 살의 청춘을 보낸 작가의 자전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성장소설인데 그 성장기가 '아름다운 지옥'인 것이다. 작가는 서울 청량리의 단층 기와집에서 그 시절을 났는데 그 집에는 술집 하나가 딸려 있어 '니나노~'에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술취한 음흉한 남정네와 마주치기도 했단다.

'한 여자 아이가 세상에 한 여성으로 태어나기까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삶의 편린들이 아프게 들어와 박혀야 하는 걸까.'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이광수의 '사랑'보다는 '선데이 서울'을 더욱 탐독하고,그럴 듯하게 변장하고 성인 영화 '별들의 고향'도 보러 가고,그런 일들이 삶에 사금파리처럼 박혀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남아있는 것은 여동생의 죽음이다. 그 여동생은 암에 걸려 지극히 큰 고통을 치르다가 열일곱의 어느 날 밤에 '언니…언니…있잖아,재밌는 얘기 좀 해줄래?'라는 말을 남기곤 스스르 꺼져버린 조숙한 문재를 지닌 아이였다.

'나는 그 발을 만져보았다. 드디어 인간의 생이 얼마나 비루하고 남루한 것인지,비수처럼 아프게 뇌리에 꽂혔다. 나는 그 발에 뜨거운 입술을 대고 입맞춤을 했다. 잘가라,흰 새야.' 그런데 '언니야,내가 다 못 쓴 글을 써다오'라고 말한 적이 있는 그 동생은 언니의 이름으로 신춘문예에 몰래 투고했는데 그게 당선이 됐단다(물론 사실을 얘기하고 당선 취소시킨다). 이후 작가에게는 베아트리체가 갑자기 죽자 '신곡'을 쓰기 시작했던 단테처럼 글쓰기의 열정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단다. '그 중독으로 삶이라는 지옥의 고통을 이겨내리라. 아니 지옥의 고통을 낱낱이 이야기 하리라.'

사랑했던 이에게 편지가 온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마지막 구절이 들어 있다.

'살도록,과오를 범하도록,타락하도록,승리하도록,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랭보가 했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라는 말과 비슷한 바 있다. 이 소설의 전언이라면 전언이다.


<줄거리>1남 3녀중에 장녀인 혜진은 작은집으로 이사를 오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격는다.
아버지는 군대를 제대한후에 계속되는 사업실패에 집안에는 돈 한푼 안가져다주고,
어머니는 집에 세를 놓고,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기 바쁘시고,
둘째 짠니는 똑똑하지만 여상에 들어간후에 아프다가 결국 죽게되지만, 그것이 큰니 혜진은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을 하게되며 고민하며 슬퍼하지만 흰새가 되어 날아갔다고 믿고,
술집의 친한 누나는 대학생을 좋아하다가 죽지만, 유품으로 대학생 사이에서 딸이 있었다는것을 알려주지만.. 혜진은 그 대학생을 사랑하게되고, 혜진을 좋아하던 동창은 그 대학생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이들의 삼각관계속에서 누구를 택하지는 않지만 서로간에 애증관계.. 그리고 대학생의 일기를 훔쳐본 혜진과 동창의 고민...
막판에 아버지가 사업을 부도를 내고 집을 팔게되고, 대학생은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가고, 새로운 집주인이 죽은 동생이 아끼던 수선화를 베어버리는것을 보면서 아름다운 지옥을 떠난다.


줄거리 : 1인칭 화자인 주인공 김혜진이 12살때 퇴역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 청량리의 작은 집으로 이사와 라일락 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12년 전 프랑스 유학시절, 자두나무 아래서 처음 구상됐다고 한다. 소설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괴감, 삶에의 호기심과 실패감 등 온갖 모순된 감정들이 뒤섞인 사춘기 시절을 통과해 21살의 대학생이 되기까지 주인공의 자잘한 일상사가 펼쳐진다. 인물 좋고 꿈도 크지만 늘 실패를 거듭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내조하면서 네 자녀를 키우느라 악다구니만 남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혜선과 혜미, 남동생 종민이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혜진은 파리한 안색에다 안경을 낀 새침떼기지만 일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다. 자존심 강한 그에게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세를 놓은 아래채 술집 논산옥의 작부와 술취한 남자들을 보면서 사는 것은 굴욕적인 일이다. 진숙이란 어린 창녀는 혜진에게 살갑게 굴고 어머니가 집을 비웠을 때 치른 초경의 뒤치다꺼리를 해준다. 혜진은 사대문 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교내신문 기자로 일하게 되고 나이에 비해 조숙한 현아, 부잣집 딸 미란 등과 사귄다. 철학도를 지망하는 현섭이란 남학생도 알게 된다. 그후 여대생이 된 그에게 진숙의 애인이었던 복학생 영문이 찾아오고 진숙이 영문의 아이를 남몰래 낳은 채 죽었음을 알게 된다. 10·26, 5·18로 이어지는 유신말기 대학생활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보다 혜진을 괴롭힌 것은 동생 혜선의 죽음이다. 성격좋고 똑똑하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동생은 다리의 작은 종양이 암으로 발전해 죽어가면서도 언니 혜진의 이름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학이란 숙제를 남긴다. 뒤죽박죽한 주인공의 내면고백은 성장의 의미를 충실히 대변한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발을 빼고 싶은 심정, 그러면서도 그것을 사랑하고 그곳에 뿌리내리는 과정은 성장소설의 전형이다. 한밤중 사촌오빠가 가슴을 더듬었던 일로부터 시작해 현섭과의 첫키스, 얼떨결에 치르는 첫날밤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성에 눈뜨는 과정도 생경하고 솔직하게 묘사된다. 가난한 서울변두리의 삶, 작부와 대학생의 사랑, 고교의 서클활동, 대학 초년생의 미팅, 박정희의 죽음과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운동권의 움직임 등 당시 사회상이 두루 반영돼 있다. 특히 혜선의 문재(文才)와 그가 언니 이름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일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예시와 같은 것이다.
   주인공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9년간 머물던 그 집을 떠나고 라일락 역시 새주인에 의해 뿌리뽑히지만 혜진은 ‘아무데서나 뿌리도 잘 내리고 천덕꾸러기 같이 잘 크는’ 나무의 생명력을 얻는다. 또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살도록, 과오를 범하도록, 타락하도록, 승리하도록, 인생에서 인생을 다시 창조하도록’이라는 문구를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 작가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여러 삶의 여러 조각들이 모자이크처럼, 아니 스테인드글라스 색유리 조각들처럼 모여 이루는 조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한 여자아이가 스스로 빛이 되어 미로 같은 세상 속을 밝히며 길이 되기도 하고, 타인들의 색유리 조각 같은 삶을 비추기도 하는 그런 소설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추천동기 : 재미는 물론, 그 시절 풍경을 잘 살려내어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게 하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암울했던 시대를 정치적 시선에서 약간 빗겨나서 이야기하고 있어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되고,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재미는 물론 탄탄한 스토리와 작가의 문장력에 있지만, 그와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이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1970년대의 풍경입니다. 젊은이들을 옥죄던 유신체제의 모습은 이 소설 속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비록 주인공은 본격적인 정치 운동에서 한 걸음 빗겨난 곳에 서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이 소설 속에서의 현실 묘사는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가 그렇게 어둡고 암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논산댁 큰아들인 수범이가 엉터리로 부르는 팝송들은 영어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우리 어렸을 적의 모습 그대로이지요.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오도바이~” 하고 억지로 가사를 지어내 부르면서도, 좋아하는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밤마다 통기타를 튕기는 수범이의 모습은 그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책을 덮으면서 권지예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마치 드라마 같다라고 느껴졌습니다. 드라마로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슴에 찍힌 ‘가족’이라는 낙인

예전에 권지예는 한 소설집의 서문을 통해 자신에게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마음을 알게 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천재’ 동생이었다며, 열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 동생에게 소설집을 바친다고 쓴 적이 있다. 몇몇 인터뷰에서도 권지예는 동생의 문재(文才)와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은 영향에 대해 언급했다. 이렇게 권지예의 가슴 한 구석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던 동생의 이야기를 포함해, 가족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지옥》에서 한 축을 이루며 등장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혜진의 동생 혜선은 암을 앓으면서도, 육체의 고통과 그로 인한 영혼의 침잠까지 말없이 참아내는 속 깊은 소녀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유작으로 쓴 소설을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언니 이름으로 내면서 언니가 작가의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혜선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남긴다.
또한 계속 사업에 실패하면서도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외양만은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차리고 다니는 아버지, 생활고에 찌들어 살면서도 아버지의 자존심만은 지켜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 그리고 철모르는 동생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혜진과 함께 청량리 단층 기와집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견 답답하면서도 일견 정겹다.
끊임없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혜진의 모습은 성장기에 유사한 경험을 해 본 독자들로 하여금 옛 추억에 웃음 짓게 한다.

한 사람의 여성이 된다는 것

《아름다운 지옥》을 떠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한 아이가 겪는 혼란과 그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드는 사랑이다.
기와집 바깥채에 술집 논산옥이 세 드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여자들의 유혹과 남자들의 욕망에 익숙해져 버린 혜진은 자신에게는 ‘절대로 사랑이 깃들 수 없을’ 것이라며 절망한다. 고무줄 끊어지는 헐렁한 팬티와 누리끼리한 엄마 속치마를 물려받아 입은 채 바깥채에서 들려오는 뽕짝 소리를 들으며 자라난 소녀는 이광수의 《사랑》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선데이서울》이 보여주는 원색적인 자극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혜진에게도 운명처럼 사랑이 찾아온다.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혜진이 자신도 모를 상처를 안고 있는 남자를 안아주는 첫날밤의 묘사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생경스럽다.
또한 그 남자와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는 논산옥의 어린 작부 진숙의 가혹한 운명은, 순박하고 착한 여자들에게마저 어김없이 다가들고 마는 생의 시퍼런 채찍 자국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권지예는 <작가의 말>에서 “한 여자 아이가 세상에 한 여성으로 태어나기까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삶의 편린들이 아프게 들어와 박혀야 하는 걸까. (…) 나는 그저 자유롭게, 한 여자 아이가 스스로 빛이 되어 미로 같은 세상 속을 밝히며 길이 되기도 하고, 타인들의 색유리 조각 같은 삶을 비추기도 하는 그런 소설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책속으로>
혜선이는 오래전부터 바지를 입는 남자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천진한 얼굴로 잠든 혜선이가 거침없이 내 배 위에 상처 입은 오른쪽 다리를 터억, 올려놓는다. 배 위에서 혜선의 다리를 내려놓으며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게도 혜선이 같은 든든한 여자 남편이 있다면.....
그래 그런지 혜선이를 따르고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혜선이는 말이 없을 때는 없다가도 떠들때는 목청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나와는 달리 남자처럼 큰 덩치와 거침없는 성격으로 친구들을 불러와 말뚝박기 놀이를 하고 있기도 했다. 혜선이의 천진난만한 친구들은 혜선이를 보고 "두목!" 이라 부르며 쫓아다녔다.--- p,189

나는 그 발을 만져보았다. 드디어 인간의 생이 얼마나 비루하고 남루한 것인지, 비수처럼 아프게 뇌리에 꽂혔다. 나는 그 발에 뜨거운 입술을 대고 입맞춤을 했다. 잘가라, 흰 새야. 이 남루한 발을 잊고 다친 다리도 잊고 이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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