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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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씨의 자서전이라고 할까.. 암튼 어떤 특별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보다 40대의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은 책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이 느껴진다. 공병호라는 사람과 정말 비교된다고 할까...
40대에 IBM을 그만두고 나와서 막막했던 생활.. 그때 어떻게 마케팅을 할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다가 자신은 적극적이 못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사람들을 찾아가는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한다라는 마케팅을 생각하고... 거기에 특히 일이 없는 상황에서 남는 시간에 책을 쓰고, 단식을 하면서 보내던중에 책이 히트를 치면서 자신의 뜻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책이 히트를 못쳤다면 지금 구본형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책을 보면서 밥벌이를 참 즐겁게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는 이론가는 아니고, 자신부터 무선 사례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의 생각.. 그의 하루를 정말 멋지게 보여주었다.
친구이자 스승의 관계인 자식에 대해서.. 북한산 아래의 멋진 집에 대해서.. 북한산에 대해서.. 개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멋진 인생은 멋진 하루로 부터 시작한다는 그의 말에 정말 오늘 하루 멋지게.. 완벽하게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많은 독서, 생각, 사색, 글쓰기로 구본형씨와 같이 멋진 인생, 멋진 글, 멋진 생각을 가지며.. 배풀며 살아가고 싶다.

<도서 정보>제   목 :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자아경영 프로젝트
저   자 : 구본형
출판사 : 휴머니스트(humanist)
출판일 : 2004년 3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3/19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멋진 하루! 멋진 인생! 완벽한 인생! 완벽한 하루!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하자!

<미디어 리뷰>
저자: 구본형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한국 IBM에서 경영혁신팀장으로 변화와 개혁의 실무를 총괄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IBM 본사의 말콘 볼드리지 국제 평가관으로 호주, 대만,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IBM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조직의 경영 건강을 진단하고 컨설팅했다. 현재 변화 경영 전문가로 활동중이며 '구본형 변화 경영 연구소'(www.bhgoo.com) 소장으로 칼럼리스트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씨가 제안하는 Me-Story 프로젝트. 10년에 한번씩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보며 기록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인 이 책은 자서전 형식을 취한 구본형 개인에 대한 기록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아경영의 기록이다.

위대한 사람들의 역사와 달리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며, 그 시간을 직접 겪어온 본인조차도 그 의미를 잊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만약 10년에 한번씩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이 기록은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것이 된다. 부족했던 부분을 깨달을 수 있고, 채우지 못한 희망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20대나 30대부터 이를 기록할 수 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10년은 구본형씨의 40대의 삶이다. 직장과 가정의 삶에서 새로움이 사라지는 시기, 의욕과 비전을 애써 찾아야 하며 때로는 많은 것을 담보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힘든 시기인 40대의 10년 동안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가꿔왔는가를 살펴 보면서 열가지 이론보다 더 강한 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1. 지난 10년
2. 마흔 살
3. 직장생활
4. 얼굴-페르소나
5. 가족
6. 자연
7. 건강
8. 길에서
9. 집, 공간
10. 학습
11. 장 일

나는 지금부터 10년에 한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40대의 10년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규칙이 생기면 즐거움은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멋대로 하는 재미와 기쁨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규칙과 표준이 창의성을 말살'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끄는 정신적 물결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잃으면 배를 띄울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누군가의 칭찬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엇인가 정말 괜찮은 것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황현의 절명시
"내게 꼭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나라가 선비를 기른지 500년이 되었건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이가 없다.
다만 그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 들이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 불렀다.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줄 뿐이다.

난 가발은 싫어한다. 가발을 쓰면 처참해질 것같다.
다른 사람처럼 평균이 되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이탁오)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르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 부른다.
갈등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히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돈벌이를 하게 되면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된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개씩, 수만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고,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 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노동은 노동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노동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었고 몰두했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동처럼 그 성과가 눈에 잘 나타나는 것도 없다.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 <니체+@>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처럼 가슴 뛰는 일이 없을 때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한 번에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는 더딘 깨달음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는가?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답에 접근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다.

어제 읽던 책을 끝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고, 오늘 못보면 언젠가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내겐 이것이 하루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최인훈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진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수신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의 첫번째 고객은 나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 진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모든 숨겨진 욕망은 개인적이다. 따라서 개인적 관심사와 맞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내용이라도 진심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째째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사는 것이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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